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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선배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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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9월 14일 (수) 11:42:37 M cbmedia@hanmail.net
안녕하세요 L선배.

어제 L선배가 사표를 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한편으로는 잘 됐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기억하는 L선배는 세파에 흔들리면서도 기본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있듯, 평기자시절 후배들을 위하고 기자정신에 대해 입에 개거품을 물고 말하던 선배들이 부장이 되고 데스크가 되면서 기자정신보다는 광고실적에 목을 매던 모습을 보며 저게 내 미래의 모습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L선배는 달랐습니다. 단기간의 성과에 급급하기 보다는, 나만 살겠다고 무리해서 기업을 협박하기 보다는 협조해달라며 부탁조로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기자는 일단 기사를 잘 써야 한다며 후배들을 불러다 야단을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수습기자가 협찬공문을 들고 기업을 돌아다닐 때, 기업임원과 부장과의 약속을 잡기위해 취재현장이 아닌 홍보실 언저리에서 동분서주 하고 있을때, 기사를 잘 썼다고 칭찬받는 것 보다 영업을 위해 고위 임원과의 만남을 성사시켰다고 칭찬받으며 괴로워 하고 있을때 그 아픔을 이해할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취기에 평소에는 어려워 말도 못 부치는 한 선배에게 "이게 무슨 언론이냐, 적어도 한참 혈기왕성한 수습기자들에게 까지 이래서는 안되는 거 아닌가"라며 성토했던 적이있습니다.

그 선배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네가 생각하는 언론은 대한민국에 없어."

그 선배가 취해 혀가 꼬인 발음으로 하던 이 말이 아직도 제 귀에 생생하게 울려 퍼집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하지요. 겁 많고 소심한 제가 태어나 처음으로 마음졸이며 사직서를 썼을때 L선배가 저에게 물어봤지요.

"왜 그만두는 거냐?"

"저는 기자가 되고 싶은데, 자꾸 회사원이 되라고 하네요. 이런게 기자라면 싫습니다."

그때 한참 조카뻘의 저를 바라보며 착잡한듯 담배를 태우던 L선배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날 L선배는 제 손을 잡고 다른 언론사 임원과 면접을 보게 해 주셨지요. 여러가지 이유로 연이 닿지는 않았지만 정말 감사하더군요.

단지 면접을 보게 해줬다는 것에 감사하기 보다는 이사람은 나를 인간으로 대해주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인의 아픔에 둔감한 시대라고 하지요. 다들 나만 아프다고 나만 힘들다고 아우성들입니다. 이런 아비규환 같은 현실속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해 줄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하지요.

나라는 개인이 어떤 존재로서 인식되기 보다는 도구로서 인식되는 현실속에서 L선배는 저를 존재로 받아들여 줬습니다.

오늘 제가 몸 담았었고, L선배가 떠나온 그 직장의 동기들을 만나 밥을 먹었습니다.

동기가 그러더군요, "너네 전 부장이 너 있을때 협찬 때문에 힘들었다고 하더라 참 어이가 없어서"

이 말을 듣는데 기분이 나쁘기 보다는 안도의 한숨이 나오더군요. 전 직장에서의 제 역할은 기자가 아니었고 그만둔 저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걸 다시 확인하게 됐으니까요.

L선배. 말 많은 동네라 그런지 L선배의 사직을 두고도 여러가지 말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더러는 비난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를 비롯한 다수의 후배들은 좋은 선배가 떠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하면서도 더 나은 삶을 위해 쉽지않은 발걸음을 뗀 L선배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바람이 차가워 졌습니다. 앞으로 더 추워지겠지요. 바람은 차가워도 선배 마음속 온기만큼은 지금까지 그랬듯 식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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