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칼럼 | 심웅섭 맨눈으로 세상보기
   
내 똥구멍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2011년 11월 04일 (금) 10:29:45 심웅섭 shimws2002@hanmail.net

가운데 손가락으로 똥구멍 입구를 살살 문질러 본다. 따뜻한 물과 부드러운 살의 감촉이 정겹다. 이번엔 똥구멍을 좀 더 벌리고 약간 깊이 손가락을 넣어본다. 조금 더 말랑말랑 부드럽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마치 연꽃잎처럼 연하게 붉은 그 모양새가 눈앞에 그려진다. 내 몸에 이렇게 부드럽고 예쁜 곳이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하고도 흥분된다.

내가 내 똥구멍을 처음 만져 본 것은 5-6년 전, 네팔을 여행하면서부터다. PD연합회에서 방송대상 수상자들에게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여행을 제공했는데 방송대상도 타지 못한 내가 어찌어찌 동행하게 된 것이다. 평소에도 등산과 여행하기를 좋아하던 나였으니 얼씨구나 좋다 설레는 마음으로 따라 나섰는데, 그렇게 도착한 네팔의 산간마을 화장실에서 첫 경험을 하게 되었다.

시골의 화장실에는 당연히 있어야할 화장지는 없고 커다란 물통에 맑은 물이 반 통 쯤, 그리고 작은 바가지 하나가 셋팅 돼 있었다. 당황스럽지는 않았지만 순간 묘한 충동이 솟구쳤다. 그래, 로마에서는 로마법이라는데 못할 게 뭐람? 전해들은 얘기와 상상력과 순발력을 총 동원해서 뒷물을 시도했다. 망설임 끝에 실행에 옮겼는데..... 허 생각보다는 그리 어렵지도 불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비데를 쓰는 것 보다 개운한 느낌, 그리고 기계에 내 몸을 맡기지 않고 스스로 뭔가를 해냈다는 뿌듯함마저 슬며시 느껴졌다. 특히 난생처음 만져보는 내 똥구멍의 감촉은 그지없이 부드럽고 놀라웠다. 그 이후 네팔에 머무는 동안 나는 자신만만 맨 몸으로 화장실을 드나들었고 보름간의 여행을 마칠 때는 마치 원래 그렇게 했듯이 자연스럽게 뒤처리를 하곤 했다.

 귀국 후 화장지와 비데로 옮겨온 내가 다시 똥구멍을 만지기 시작한 것은 치질 덕분이었다. 피곤하거나 무리를 하면 이상신호가 오곤 하는 내 똥구멍을 두고 내린 최선의 결론이 바로 좌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침저녁으로 변기에 걸터앉아 내 똥구멍을 만지면서 이번에는 참으로 별스러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치질이 단순히 운동부족이나 의자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똥구멍을 외면하고 홀대한 데서 생긴 인과응보가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따지고 보면 내가 의식이 생겨난 이후에 내 똥구멍을 만져 본 것은 고사하고 제대로 바라 본 적도,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었다. 음식이 들어가는 구멍은 하루에도 몇 번씩 닦고 쳐다보면서 그 음식이 소화되고 나오는 구멍은 철저히 외면하고 부정했다는 말이다. 마치 내 몸에 존재하지 않는 듯. 그렇게 만져지지도 인정받지도, 아니 불리지도 못한 채 지난 52년을 어두운 곳에서 지내왔으니 나의 똥구멍은 얼마나 서글펐을까? 혹시 스스로를 쓸모없는 천덕꾸러기라고 스스로를 비하하면서 어둠 속에서 살아온 것은 아닐까? 그런 세월 끝에 생긴 병이 가벼운 치질이라면 오히려 똥구멍에게 감사인사라도 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런데 어찌 똥구멍뿐이랴? 밝고 즐겁고 달고 사랑스러움에 밀려나버린 어둠과 고통 슬픔 죽음은 또 얼마나 많은가? 먹는 구멍과 싸는 구멍에 우열이 있을 수 없다면 내가 잊고 싶고 피하고 싶은 수많은 아픔과 슬픔, 좌절의 순간들 역시 소중한 나의 부분들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허허. 똥구멍 덕분에 이제야 철이 좀 드나보다.
다시 한 번 내 똥구멍을 쓰다듬는다.
똥구멍아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앞으로는 자주 너를 만져주고 불러줄께.
나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겠니?

   
 

ⓒ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http://www.ccdmcb.org)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단체소개  |  찾아오시는 길  |  제휴안내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