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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미고개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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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3일 (금) 17:26:56 심웅섭 shimws2002@hanmail.net

지난 봄 어느 날이던가, 교회에서 집으로 향하다가 얼결에 낯선 길로 접어들었다. 한밭도서관을 지나고 충대병원을 지날 때 까지도 그 길은 그저 수많은 길 중의 하나, 낯선 도시풍경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화들짝 놀라버렸다. 내 눈앞에 너무나도 낯익은 장소, 테미고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시멘트 담벼락에 슬레이트 지붕을 인 판자집들과 좁은 골목길, 골목 끝자락 보문산 기슭에 붙어있던 무덤까지...... 주변 도시의 변화와는 달리 25년 전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바로 그 테미고개. 순간 나는 가슴에 찌르르하는 통증과 함께 까까머리의 고등학생으로 돌아가 버렸다.

충주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대전으로 이사를 왔다. 당시로서는 명문이라고 하는 모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어린나이에 유학을 온 것이다. 그런데 시골도시의 과수원에서 맘 놓고 뛰놀던 내가 낯선 도시에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난다 긴다 하는 녀석들이 모인 학교에서 성적도 잘 나오지 않았고 때 맞춰 아버지마저 위암으로 돌아 가신데다가 사춘기마저 찾아왔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런 막내아들의 양육을 책임지고 대전으로 오셨고 값싼 월세방을 찾아들어간 곳이 바로 테미고개의 어느 지붕 낮은 주택 문간방이었다.

돈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 도시에서 어머니는 얼마간 돈 벌 곳을 찾아 헤매시다가 어느 날 고물장사를 하시겠다고 내게 선언하셨다. 밑천도 필요 없고 돈벌이도 괜찮다는 설명이었다. 순간 나는 어머니가 고생하실 것에 대한 걱정보다는 누가 알면 어쩌나하는 부끄러움이 앞섰다. 어쨌거나 그렇게 어머니의 고물행상이 시작되었다. 고물상에서는 여자인 어머니에게 맞는 자전거바퀴를 단 특수리어카를 지급했고 어머니는 그 리어카를 끌고 대사동으로 부사동으로 멀리는 인동으로 고물을 모으러 다니셨다.

더위와 추위와 배고픔과 목마름과, 그보다도 더 큰 외로움을 가슴에 꼭꼭 눌러가며 고물 리어카를 끄시던 어머니. 저녁이 되면 피곤한 당신의 몸 걱정보다는 집에서 기다릴 막내아들을 위해 한달음에 달려오셔서 따뜻한 밥을 해주시고 온갖 정성을 쏟아주신 어머니. 그러나 나는 그런 어머니의 고물리어카를 한 번도 밀어드린 적이 없다. 부끄럽고 창피해서 피해 다녔을 뿐이다. 어머니도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피하셨기 때문일까, 우리는 다행히(?) 길에서 마주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대흥초등학교 부근의 어느 골목길에서 어머니와 조우하고 말았다. 초라한 고물 리어카 앞의 한 여인의 모습은 낯설었으나 낡은 밤색 털모자는 너무나도 익숙한 어머니의 것이었다. 순간 부끄러움에 그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그렇게 아들을 위해 온 몸을 던지신 어머니 덕에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어른이 되었고 어머니는 일흔이 되시기 전에 중풍이 걸려 9년 동안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다. 아무래도 젊었을 때의 그 가난과 외로움이 어머니의 무쇠 같던 건강을 조금씩 갉아먹었으리라.

지금도 나는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가슴이 아려오고 눈이 젖어온다. 어머니의 고생과 외로움이 가슴에 그대로 느껴지기 때문이고, 그런 어머니의 리어카를 한 번도 밀어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죄송스럽기 때문이다. 테미고개를 지나 어느 골목길에는 아직도 어머니의 체온과 숨결과 발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어쩜 지금이라도 좁은 골목길을 돌아들다가 다시 어머니의 고물리어카와 마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제는 외로운 어머니의 어깨를 꼭 안아주고 싶다. 차가운 손을 잡아드리고 싶다. 아니 그 고물리어카에 엄마를 태우고 앞서 끌면서 목청껏 외치고 싶다.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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