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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입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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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8월 29일 (수) 14:50:37 심웅섭 shimws2002@hanmail.ne

책장에 이어 의자까지 날렵하게 완성해놓으니 이젠 제법 자신감이 붙었다. 이번엔 참죽나무 식탁에 도전하기로 했다. 첫번째 과정은 상판 만들기. 4cm 판재를 이어 붙여 집성판을 만들어야하는데 물론 처음해보는 도전이다. 줄자와 삼각자로 위치를 잡아 드릴로 구멍을 뚫어 목심을 밖고 접착면에는 친환경 목공본드를 발라 붙인다. 이런 작업에는 접착면을 고르게 해 줄 자동대패와 고정시키기 위한 크램프가 꼭 필요한데 내게 그런 엄청난 장비가 있을 리 없다. 비닐 끈으로 이리 묶고 저리 당기고 씨름 끝에 아쉬운 대로 상판이 완성되었다. 이젠 다리와 상판하부를 만들 차례. 연필로 긋고 원형톱으로 이리저리 잘라 모양을 만들어간다. 절단면도 약간씩 울퉁불퉁, 투박하고 무겁지만 튼튼하기는 비할 데 없는 식탁이 내손에 의해 만들어진다. 상판과 하부를 이어 붙이고 사포질까지 매끈하게 해 놓으니, 오 놀라워라. 아름다운 나뭇결이며 붉은 피부며 단단하고도 섹시한 네 다리며 반반하고 아늑하기까지 한 상판까지...... 내가 지금까지 본 가장 아름다운 식탁이 지금 막 이 세상에 창조되었다. 그것도 내 손에 의해서.

내가 아마추어 목수로 입문한 것은 겨우 넉 달 전, 자그마한 목조주택을 완공하고 난 후부터다. 어차피 건강을 생각해서 나무집을 지었으니 웬만한 가구와 집기류들은 나무로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때마침 이장님이 옹이가 특별히 많아 예쁘다는 말과 함께 굵은 낙엽송 세 덩어리와 지름이 한자가 넘는 참죽나무를 선물한 것도 목수탄생에 한몫을 했다.

제재소에서 켜 온 낙엽송은 겉에서 보기와는 전혀 다르게 나뭇결이 환상적이기까지 했고 그 향기는 어떤 꽃보다도 향기롭고 매혹적이었다. 아내와 나는 즉시 낙엽송에 매혹되었고 야간작업까지 해대며 껍질을 벗기고 사포질을 해서 TV장과 책장까지 만들어냈다. 집안에만 들어서면 은근히 풍기는 나무향기를 맡는 일도 행복했고 무엇보다도 내 손으로 이 엄청난 작품을 탄생시켰다는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어느새 공구들이 한 두 개씩 늘어나고 작업대와 작업장이 만들어 졌다. 그 사이 집안에는 붙박이장이 완성되었고 식탁용 의자 세 개가 날렵하게, 혹은 묵직하게 만들어졌다. 개집이니 우편함이니 두부틀이니 하는 소품들은 물론이고 동네 사람들의 야외 테이블도 두 개나 만들어 냈으니 아쉬운 대로 목공소 간판이라도 붙여야 할 정도다.

고백하자면 나는 목수경험은커녕 책꽃이 한 번 짜 본적이 없다. 해 본적이 없으니 못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다. 그런데 나이 오십이 넘어 우연히 시작한 목수일이 이렇게 쉽고도 재미있다니, 참으로 놀랍고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놀랍다는 것은 내 속 어디에 그런 엄청난 목수본능이 숨어있었다는 것이요, 안타깝다는 것은 그런 재능을 모르고 지금껏 남이 만든 물건만 사다 썼으니 그게 안타깝다는 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 묻어둔 나의 재능은 목수일 뿐만이 아니다.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며 살아보니 나는 땅도 잘 파고 흙일도 잘하고 기운도 세고 눈썰미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리고 언제부터 재능을 잃어버리고 살아왔을까?

몇 년 전 히말라야의 따망족 마을을 여행했을 때의 일이다. 문명이라곤 전기도 전화도 자동차도 없는 히말라야 오지마을에서 때묻은 옷을 입고 사는 따망족들은 모두들 여유롭고도 자신감 넘치고 쾌활하기까지 했다. 자신들의 가난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가난하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쓰는 물건들 대부분을 직접 만들어 쓰고 있었다. 남자들은 나무를 깎아 수레를 만들거나 집을 짓고 여자들은 양털로 털실을 짜고 길쌈을 하고,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 곁에서 소리 지르며 뛰어 놀고...... 문득 사람의 행복은 자신이 쓰는 물건을 직접 만드는 데서 나올 수 있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소소한 것들을 직접 구상하고 만들고 고치며 살아가는 것, 어쩌면 수 십 만 년 간 우리의 유전자에 깊숙이 각인된 본능일 것이다. 그런데 그 본능을 거세당하고 공장에서 혹은 전문가가 만들었다는 물건들을 사다 써야 하는 현대인들은 어쩜 행복할 권리를 원천봉쇄 당한 채 소비할 의무만 지고 사는 불쌍한 군상들은 아닐까.

초보 목수가 행복한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은 만들 것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 식탁이 끝나면 책상, 책상이 끝나면 그네소파, 그게 끝나면 CD장, 내 것이 모두 끝나면 친구와 이웃들의 물건까지 만들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배워야 할 기술들이 많다는 것도, 서툰 솜씨로 만든 것조차 사람들이 감탄해마지 않는 것도, 필요한 걸 뚝딱 만들어 내는 남편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아내의 눈길을 즐기는 것도, 무엇보다도 내 손으로 내 맘대로 만들어 낸다는 것까지...... 이래서 오늘도 초보목수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음, 그래. 어쩜 난 목수의 재능을 타고났는지도 몰라. 퇴직하고는 아예 목수로 나서는 건 어떨까? 아니, 뭐 그때 까지 기다릴 거 있나, 당장 목공예가로 명함을 파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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