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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울어야 했던 광주에 바치는 노래
공선옥 소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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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 15일 (수) 15:43:25 이수희 cbmedia@hanmail.net

또 다시 오월이다. 올해 오월은 ‘임을 위한 행진곡’ 이 노래를 쓰지 말라는 이상한(?) 논란으로 시작했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리기 위한 작품들이 선을 보인다. 작품만이 아니라 아직도 5.18에 대한 역사적 평가 운운하며 서로 편을 갈라 벌이는 논란도 끊이질 않는다. 나는 올해 오월을 맞이하기 전에 공선옥 소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를 읽었다. 소설 한권 읽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안타까움을 어쩔 수 없어 무언가라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 공선옥 소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공선옥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가 언어를 다루는 감각이 얼마나 탁월한지를, 아픔을 그만큼 잘 그려내는 작가도 드물다는 걸 말이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는 ‘오월’을 이야기한다. ‘오월’ 의 또 다른 희생자들....소설 속 사람들의 아프고 신산스럽기만 한 삶을 이야기한다. 분명 아픈 이야기인데 마치 아름답기까지 한 아련한 풍경을 보고 있는 듯 아름다운 말들로 슬픔을 말한다.

정애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을 보살핀다. 아버지는 돈 벌러 외지로 나갔고, 어머니는 그저 소리만을 낼 뿐 동생들을 봐 주지도 않고 돼지도 거두지 못한다. 학교도 못가고 집안을 위해 희생을 강요당한 정애는 새마을 가꾸기 사업에도 울력을 나가게 될 처지다. 그 사이 마을엔 힘있는 사람들이 정애네를 괴롭힌다. 죽은 돼지를 그냥 가져가기도 하고, 애써 키우던 오리도 잡아먹고 오리발을 내밀기도 한다. 정애는 그들을 어떻게 해버리고 싶었지만 결국 마을을 떠나게 된다. 정애 동생 순애는 나쁜 짓을 당했는데도 동네 망조 든다는 동네 사람들 타박 때문이다. 그렇게 동네를 떠났지만 정애마저 피투성이가 되었다. 군인들에게 변을 당했다. 정애는 해시시 웃기만 할 뿐 더 이상 동생들을 돌보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정애와 한마을에서 자란 묘자도 엄마가 하는 식당에서 만난 박용재를 따라가 살림을 차린다. 둘은 몸을 합쳐 어른이 됐지만 돈이 너무 없었다. 게다가 박용재는 군인들에게 이유 없이 당한 오월이 다가올수록 미쳐간다. 결국 그는 임신한 묘자의 뱃속에 군인들의 아이가 자라나고 있다고 말하고, 묘자는 그를 목졸라 죽여버리고 만다. 그를 죽이고서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묘자는 왜 세상이 우리를 이대로 내버려뒀느냐며 외치지만 살인자로 끌려갈 뿐이다.

도시에서 다시 마을로 돌아온 정애에게 동네 사람들이 말한다. “사람들은 자네를 미쳤다고 할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미쳤다고 하기로 치면 자네를 미쳤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미친 것은 다 한가지지. 세상이 미친 거여. 미치지 않은 세상은 언제였을까. 나한테도 미치지 않는 세상이 있었을까. 미친 세상에서 미친 사람만이 미치지 않은 거여. 정애 자네만이 미치지 않은 사람이여”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었던 정애와 오월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야 했던 묘자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처지다. 정애는 미친 세상에 미치지 않은 사람이고, 묘자는 몸이 묶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묘자는 정애가 아니면서 정애인 여자를 만난다. 여자는 진언을 외는 소리 같디고 하고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피리 소리 같기도 한 노래를 불렀다. 묘자 귀에는 아아아아아이이이리리리링이이이이오오오이이이리리리… 라고 들리는 노래. 묘자는 여자에게 무슨 노래냐고 묻는데 여자는 이미 세상 저 너머로 간 사람 같은 목소리로 “내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나는 어디로 갈까, 내 노래는 어디로 갈까…라고 흥얼거리며 사라진다. 묘자도 여자의 노래는 어디로 갔을까, 저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를 생각하며 하염없이 내리는 빗속에 서 있었다.

공선옥은 작가의 말에서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노래하고 혼자 울었던 어머니에게,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들어주는 사람 없어 혼자 울어야 했던 그대 광주에 바친다”고 썼다.

‘알아먹을 수 있는 말’은 말로 들리지 않고, 아픈 사람들이 알아먹을 수 없게 내는 소리가 오히려 더 다가오는 세상은 제대로가 아니다. 나 역시 이 소설을 읽으며 ‘미치지 않은 세상은 도대체 언제였을까’를 생각한다.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게 살다가 오월이 와 ‘속으로 울어야만 하는’ 아픈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도 어찌 보면 위선일 수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만 해서야 쓸까. 정애와 묘자의 아픈 노래가 끝나는 날이 오기는 올까, 그 노래에 귀 기울이는 이 많았으면 한다. 함께 아파하는 게 ‘미친 시대’를 사는 우리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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