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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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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8월 23일 (금) 16:00:22 심웅섭 shimws2002@hanmail.net

오늘도 퇴근하기 바쁘게 새로 택배로 받은 오디오 박스를 푼다. 오늘도라고 함은 이런일이 가끔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자주, 어쩌면 하루걸러 한번씩 일어나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박스의 테잎을 뜯으면서 기대와 궁금증이 고조된다. 과연 이 녀석은 어떤 소릴 낼까? 조심스레 포장을 열어보니 제법 세월의 두께가 느껴지는 놈이다. 군데군데 흠도 있고 먼지도 덜 닦였다. 하기사 세상에 태어난지 벌써 30-40년, 오래된 녀석들은 50년 이상 된것들이니 이정도 흠이야 당연하다 못해 오히려 연륜처럼 느껴져 믿음직스럽기까지하다.

소스기를 연결하고 스피커선을 물리고 일단 볼륨을 최대한 줄인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전원을 켠다. 아무 소리가 없다. 음, 일단 험(humm)은 없군. 천천히 볼륨을 올려본다. 부드럽고도 힘있는 소리가 몸을 감싼다. 어, 이거 물건이네? 클래식도 들어보고 재즈도 들어보고 가요도 들어본다. 셀렉터를 이리저리 돌려서 스피커들 (자그마치 5조인데 이번 주말까지 들어놀 놈이 2조 더 있다)에게 테스트를 해본다. 다른 앰프들 (이것도 4조다)과 비교도 해본다.

저마다 각각의 매력으로 주인님을 사로잡은 놈들이지만 특히 새로온 놈에게 마음이 끌린다. 당분간 주인님의 총애를 받을 귀한 몸이시다. 벌써 두시간째 주물럭거리는 나에게 아내는 어서 저녁먹으라고 재촉하지만 밥을 먹으면서도 마음은 오직 이녀석이 내는 소리에만 끌린다. 행복하다.

내가 오디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불과 일 년 전. 시골로 이사와서 클래식 FM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것이 발단이었다. 좀 더 감도 좋은 튜너를 한개 산다는 것이 오디오 질(?)의 시작이었다. 아니, 기계 하나에 소리가 이렇게 달라지나 하는 작은 충격에 연이은 호기심들. 스피커를 바꿔보면 어떨까, 앰프를 바꿔보면, 진공관으로 가면, LP는 CD와 어떤 차이가......

다행히 오디오에 관한 궁금증들은 무궁무진했고 앰프와 스피커와 하다못해 스피커선 하나를 바꿀 때마다 그 변화 또한 놀라웠다. 거기에 오디오에는 그 놈의 골치 아픈 매칭 (앰프와 스피커간에는 서로 궁합이 있어서 좋은 궁합의 경우 값싼 것도 좋은 소리를, 나쁜 궁합의 경우 비싼 것도 허름한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이걸 매칭이라고한다)까지 변수로 작용하니 그야말로 재미가 무궁무진하다.

골치 아픈 매칭에 재미라고 하니 그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자고로 예측할 수 없는 골치 아픈 일에서 의외의 좋은 결과를 얻는 일이야말로 재미 자체가 아닐까싶다. 생각해보라. 만일 TV를 산다고 하면 그냥 비싸고 좋은 놈을 사면 된다. (물론 경제적인 능력이 충분하다면 말이다). 당연히 비싼 TV가 화면도 클 것이고 화질도 나을것 아닌가? 그러니 이 당연한 결과에 누가 가슴 두근거리고 달려붙겠는가? 거기에 복잡한 부속기계들도 없이 턱하니 사놓고 보면 그 뿐이니 만족은 있을지언정 변수와 설레임은 없을 터, 세상에 오디오마니아는 있어도 TV마니아는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싶다.

이 오디오 질도 나름대로의 공부가 필요하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데, 공부가 부족하면 돈이 깨지리라. 당장 서점을 뒤져 오디오관련 책을 사서 주경야독 독파하고, 인터넷 웹서핑으로 눈이 빨개지고 장터를 뒤져 한 두개씩 사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교적 잘 알려진 외국의 메이커들을 한 조만 마련해서 기계를 바꿔가며 듣다가 어느 틈엔가 안방에 한 조, 이층에 한조 하는 식으로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오히려 다운그레이드로 국산 오디오들을 사서 듣기 시작했는데 요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외제에 비해서 10분의 1, 아니 그보다도 낮은 가격에 음질은 거의 비슷한, 어떤 경우에는 더 나은 놈들을 구할 수 있으니 어찌 재미가 없으랴. 거기에 당장 주머니 부담없어졌으니 나의 오디오 질에 가속도가 붙었다.

혹자들은 오디오질 하는 사람들에게 점잖게 충고한다. 기계를 탐하지 말고, 소리를 쫒지말고, 음악을 들어라. 오디오 잘못하면 패가망신한다...... 그러나 오디오 입문 1년의 햇병아리가 감히 반론을 달자면 음악을 제대로 듣고 감상하려면 기본적으로 음질이 뒷받침 돼야한다는 거고, 그 음질이 마치 사람의 목소리가 다르듯 많은 기기들이 다 조금씩 특색이 있으니 자기의 취향을 찾을 때까지는 기계를 탐하는 것도 어느정도는 당연하다는 거다.

게다가 오디오에 투입되는 돈이 생각보다는 많지 않고 또 투입된 돈도 여차하면 현금화 할수 있으니 (물론 약간의 손해는 감수해야하는데 요걸 전문용어로는 수업료라고 한다) 이보다 훌륭한 취미도 없다.

공부만 해야하는 줄 알았다. 음악은 그저 머리 식힐 때 잠시 들어야지 사대부가(?) 빠질 곳은 아닌 줄 알았다. 열심히 일해야만 하는 줄 알았다. 회사를 위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세계평화를 위해서 어금니 깨물고 뭔가를 해내야만 하는 줄 알았다. 가족을 위해 절제해야 하는 줄 알았다. 헛되게 돈과 시간을 쓸 것이 아니라 월급은 생활비와 저축으로, 여가시간은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으로 보내는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정말 필요하고 소중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나의 행복이란 걸 깨달았다. 온갖 책과 학교와 스승과 국가에서 가르친 것들이 모두 나를 주인공이 아니라 엑스트라로, 혹은 그만도 못한 소품으로 살게 하려는, 그래서 그들만 주인공으로 살아가려는 간악한 음모에서 나온 속삭임이란걸 알아버린 것이다. 오히려 모두의 소박한 행복추구와 그런 모두간의 조화와 울림이 세상을 평화롭고 따뜻하게 만든다는 이상한 사실. 이러니 나의 오디오 질은 가족과 사회와 국가와, 더 나아가 세계평화를 위한 어쩜 가장 빠른 길일지도 모른다.

아니 오디오 질 뿐만 아니라 목공하고 산책하고 풀 뽑고 효소 담그고..... 돈 적게 쓰며 이웃들과 낄낄대며 사는 나의 생활 모두가 말이다. 이러다간 다음 번 노벨 평화상 후보로 내가 거론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점잖게 사양해야겠지. "나의 오디오 질은 꼭 누굴 위해서 한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난 남의 평가에 그리 연연하고 싶지도 않고 주목 받기 싫으니 관심있는 분에게나 주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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