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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 (離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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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8월 23일 (금) 16:03:37 심웅섭 shimws2002@hanmail.net

오랜만에 목공일 좀 한답시고 작업실에 들어서니 뭔가 휙 하고 날아가는 물체가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뿔싸, 사건이 벌어졌다. 새 한 마리가 공구 수납장 한켠에 둥지를 튼 것이다. 그것도 가끔 써야하는 원형톱에 기대어 말이다. 대략난감. 나는 수시로 목공실을 드나들어야하는데 그 때마다 새는 나를 피해 도망 다녀야 하고, 나는 그게 신경 쓰여 작업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순간 주인 동의 없는 불법 건축행위에 대해 냉정한 판단을 내린다. 그래 너의 불법 건축물을 철거하지는 않겠다. 그렇다고 너를 위해 자리를 피할 생각도 없다. 나는 내 일을 할 터이니 너는 네 일을 해라. 결과는 모르겠다. 모든 게 네 책임이다.

이른 봄에 새 한 마리가 우체통에 둥지를 틀었었다. 사람들이 들고 나는 집 입구에 세운 빨간 우체통이 새에게는 퍽이나 안전하고 예쁘게 느껴졌나 보다. 서툰 목수의 허접한 작품을 선택해 준 것이 고맙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우체통 앞에 대충 장애물을 설치하고 우편물을 넣지 말라는 쪽지를 붙였다. 차를 세우고 집에 들어 갈 때에는 행여 새가 불편해 할까 싶어 가능하면 눈을 마주치지 않고 빙 돌아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해보니 새집(우체통이 아니라)에 우편물이 가득하다. 깜짝 놀라 살펴보니 새집 위로 쓸데없는 홍보물이며 고지서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다행히 알들은 무사했다. 혹시나 그 사이 알이 식어버린 것은 아닐까, 어미 새가 너무 놀라서 돌아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하며 우편물을 치우고 이번에는 큼직하게 금줄을 치고 안내문도 커다랗게 써 붙여놓았다. 다행히 어미 새는 돌아 왔고 그럭저럭 얼마가 지나 우체통에는 빈 둥지만 덩그라니 남았다. 그런데, 다른 새들은 이미 부화까지 끝낸 이 시점에, 우체통도 아니고 남의 작업공간에 둥지를 트는 건 도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어쨌거나 그렇게 새와의 불안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나는 가능하면 작업실로 들어 설 때 발소리를 죽였고 시선도 그 쪽으로 주지 않았다. 그저 모르는 척 내 일만하고 빠져 나왔다. 처음에는 내가 들어 설 때마다 휙 하고 날아가던 새도 어느 날부터는 배짱이 늘었는지 둥지를 지키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살펴보니 알록달록한 알이 모두 다섯 개가 조롱조롱 놓여있었다.

며칠이 지나 드디어 부화를 했고 어미 새는 그 가녀린 몸에 새끼들을 먹여 살리느라 쉬지 않고 벌레들을 물어 날랐다. 그런데 그 새끼들에게서 나는 참으로 신기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어미가 벌레라도 물어 올 참이면 노란 주둥이를 머리보다도 더 크게 벌려대며 찍찍 소리를 내던 어린놈들이, 내가 살펴보려 다가가면 모두 죽은 듯이 엎어져서 잠을 자는 것이었다. 혹시나 싶어서 손으로 건드려 봐도 따스한 체온만 느껴질 뿐 별무반응. 아하, 이게 엄마의 교육 때문이리라. 사람이 다가오면 어떤 경우에라도 죽은 척 해야 한다고 엄마 새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일렀겠지. 하기야 사람처럼 이삿짐 싸서 이사 할 수도 없고 보니 그저 눈치 보며 죽은 척 버티는 방법 외에 뭐가 있을까?

하루하루 새끼들의 몸집이 커져서 몇 놈은 둥지 밖에서 잠을 자기에 이르렀고 보송보송한 솜털은 깃털로 바뀌었다. 이젠 얼핏 봐서 어미와 새끼들이 구분 안 될 정도로 덩치도 커졌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동쪽 데크 쪽으로 뭔가 조그만 물체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암탉 한 마리가 혹시 먹을 건가 싶어 그 물체에 다가섰다. 이게 뭐지? 순간 소나무 위에서 어미 새가 날카롭게 울어대더니 그 큰 닭을 향해 위협적으로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바야흐로 새끼 들이 첫 비행을 시작한 것이다. 음, 이제야 날기 시작하는구나. 나 때문에 숫하게 마음 고생하더니만 무사히 컸구나. 이제 조금 더 나는 연습을 하면 며칠 내로 둥지를 떠나겠구나.

그런데 그 후로는 어미도 새끼도 둥지를 찾아오지 않았다. 리허설인줄 알았던 비행은 실제 상황, 바로 이소(離巢)였던 것이다. 서툰 날개 짓에 사냥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위험한 숲속에서 도대체 잠자고 쉴 둥지라도 찾을 수 있을까, 아침까지 만해도 어미 새의 체온 속에서 살던 놈들이 얼마나 무섭고 외로울까? 이렇게 쉽게 휙 하고 떠날 줄 알았더라면 좀 더 배려하고 양보할 것을. 못되게 군것이 못내 가슴 아렸다.

어느 순간, 이렇게 갑자기 떠나버리다니. 최소한 마음의 준비라도 하게 예고라도 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소란 원래 그런 것일 듯 싶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이별, 그러나 사실 아주 오래전에 계획되고 예고되었던 이별, 갑작스러움은 단지 나의 무지와 무관심의 결과일 뿐 이소는 가장 적절한 시기에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리라. 그렇다면 내 아이들도 어느 날 그렇게 떠나버리겠구나. 아니 대학생이 되어 따로 거처를 마련하고 있으니 어쩜 이미 떠나 버렸는지도 모른다.

이소한 새끼들을 빈 둥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겪이니 나는 참 새만도 못한 바보가 아닌가. 아이들만 그렇게 떠날 것인가. 어쩜 나도 내 삶의 둥지를 어느 날 그렇게 휙 떠나버리지 않겠는가. 떠나기 직전까지도 이소임을 미처 모르고 그 순간에서야 당황하며 안타까워하며 그렇게 떠나야하는 것은 아닐까?

새들은 둥지를 떠났지만 나는 그 빈 둥지를 치우지 못했다. 혹시라도 새끼들이 험한 숲속 생활에서 지쳤을 때 잠시라도 찾아 올 수 있을 것 같아서, 혹은 어미 새가 내년 봄에 다시 이곳에서 알을 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이러니 나는 아직 새 대가리 따라가기에도 한참 멀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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