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칼럼 | 심웅섭 맨눈으로 세상보기
   
수탉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2013년 11월 06일 (수) 14:14:44 심웅섭 shimws2002@hanmail.net

따스한 가을 햇살을 등에 지고 곶감을 깎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의 다급한 비명소리가 들린다. 이게 뭔가, 혹 가을 햇살을 쬐러 나온 뱀이라도 밟은 걸까 싶어 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아내와 수탉이 닭장 앞에서 대치국면, 아니 사실은 당당하게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수탉 앞에서 아내가 비명을 지르며 떨고 있는 상황이다. 우선 급한 대로 소리를 우렁차게 내 지르고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내 예쁜 각시에게 공격 자세를 취하다니,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중죄를 저지른 놈에게 우선 급한 대로 날렵한 발길질을 해댔다. 내 기습공격을 예측 못했는지 수탉은 미처 피하지 못해 어설프게나마 발끝에 걸렸다. 깃털 몇 개가 후두둑 흩어진다. 이정도로 멈추면 아내의 놀란 가슴에 대한 대가로는 미약할 터. 도망가는 수탉에게 몇 개의 돌멩이를 주워 이리저리 날린다. 정통으로 맞지는 않았지만 수탉은 적잖이 겁을 먹고 암탉들과는 정반대의 산기슭으로 부지런히 도망 가버렸다. 상황이야 이미 정리되었건만 큰 소리로 앞으로 한 번 더 그러다간 잡아먹어버리겠다는 경고까지 날렸다. 놀란 아내도 달래고 남자로서의 위신도 세우기 위한 일종의 마무리 멘트인 셈이다.

닭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지난 봄 부터, 알도 얻고 가끔 손님접대도 한다고 중병아리 이십여 수를 동네 사람에게서 입양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키우던 백구가 풀려 암탉들을 모두 물어죽이고 수탉만 용케 화를 피해 살아남았다. 혼자 풀이 죽어 어슬렁거리는 모습도 안타깝고 알 욕심도 나서 다시 암탉 세 마리를 입양했다. 그 후로 수탉은 볏이 더 붉어지고 털도 붉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이 그야말로 늠름한 수컷으로 기세등등하게 성장했다.

그런 닭들의 부부생활을 나는 제법 자세히 관찰 할 수 있었다. 내가 무슨 관음증 환자는 아니지만 벌건 대낮에 수시로 이루어지는 그들의 부부생활을 안 볼 수가 없어서였다. 우선 수탉에게 느끼는 것은 참으로 염치가 없다는 것이다. 처음 암탉들이 왔을 때 너무 어려서 미처 짝짓기 준비가 안 된 시기였는데도 이 녀석은 시도 때도 없이 암탉 등에 올라타려 했다. 그것도 사전 예고나 동의를 전혀 구하지도 않고, 더구나 암탉의 뒤통수 털을 쪼아서 꼼짝 못하게 하고는 말이다. 암탉 입장에선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상황. 비명을 질러대며 이리저리 도망 다닌다. 그 비명도 아주 억울해 죽겠다는 듯이 길고도 애절한 소리를 내면서. 몇 달이 지나서 암탉들이 준비되자 이젠 짝짓기도 큰 소란 없이 예사롭게 이루어지는데 그렇다고 수탉의 일방적 행위가 바뀐 것 같지는 않다. 단지 아주 짧게 양 날개를 땅 쪽으로 슬그머니 펴면서 꼭꼭꼭..... 이런 소리를 서 너 번 내면 그게 구애행위인 셈이다. 암탉의 동의 따윈 애초에 관심조차 없다. 도대체 저렇게 폭력적이고 얄미운 녀석이 어디 있을까? 암탉들은 저렇게 일방적으로 당하면서 어찌 살아갈까?

그런데 한편으로 수탉은 나름대로 남편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우선 맛있는 먹이를 발견하면 독특한 울음 소리로 암탉들을 불러들인다. 그리고 한두 번 먹이를 쪼다가 땅에 내려놓으면 암탉들이 안심하고 먹이를 먹는 것이다. 밭을 매다가 지렁이라도 발견하면 닭들에게 던져 주는데 절대로 수탉이 먼저 먹는 법이 없다. 몇 번 쪼고 나서는 암탉들에게 넘긴다. 그러면 암탉은 아주 당연하다는 몸짓으로 스스럼없이 그 먹이를 먹는다. 수탉은 주변에 암탉이 없거나 좀 작고 시시한 지렁이를 던졌을 때 아주 가끔 먹을 뿐이다.

또 텃밭과 마당과 때론 데크 위까지 진출하는 그들의 먹이활동은 전적으로 수컷의 판단에 따라 움직인다. 항상 수탉이 먼저 소리를 내며 이동하면 암탉들이 뒤를 따른다. 저녁때가 되어 주위가 어두워지면 수탉이 꼭꼭꼿 소리를 내며 닭장으로 향하고 암탉들은 일언반구의 반대나 이의제기 없이 그 뒤를 따른다. 그러고 보면 정작 암탉들은 남편인 수탉의 권위를 인정할 뿐 아니라 어쩜 아주 만족하고 있는 듯도 싶다.

이러니 수탉의 기세 등등은 그야말로 목불인견이다. 옛말에 수탉 뻐기듯한다는 말이 있거니와 별거 없는 녀석이 항상 잘난 척이다. 우선 항상 붉게 윤기 나는 깃털을 가다듬고 점잖은 걸음으로 품위 있게 걸어 다닌다. 먹이를 먹을 때 말고는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우는 소리도 최선을 다해 목청껏 뽑아낸다. 내가 가까이 다가갈라치면 우선 날개 짓을 활활하면서 위협을 하고 그래도 무시하고 다가가면 급하지 않은 척 슬그머니 피할 뿐이다. 그러다가 내가 등이라도 돌리면 급하게 부리를 세우고 돌진해 온 적도 몇 번 있다. 여북하면 몇 년 전 매를 맞으면서도 요동도 않고 대드는 수탉의 기세에 아내가 놀라 주저앉기까지 했을까. 그 이후로 아내의 수탉공포증이 시작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런 수탉의 권위를 바로 암탉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짓밟은 형국이니 녀석의 자존심은 얼마나 상했을까 싶지만, 어느새 녀석은 다시 머리 꼿꼿이 세우고 마누라들을 뒤에 거느린 채 텃밭을 누빈다. 가을 햇살이 붉은 볏 위에서 더욱 붉게 빛난다.

ⓒ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http://www.ccdmcb.org)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단체소개  |  찾아오시는 길  |  제휴안내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