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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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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2월 24일 (월) 13:59:58 김승효 backsteam@nate.com

바람이 분다. 입춘도 지나고 정월대보름도 지나서인지 봄이 코앞까지 밀려 온 모양새다. 창문을 열면 앙상한 가지들 가득이지만 목련은 꽃봉우리 솜털을 치켜세우고 있다.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기세다. 가지가 음악의 리듬을 타듯이 흔들리는 걸보니 바람이 부나보다.

어제는 라디오에서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듣는데 진행자가 "지금 여러분들이 무엇으로 변하고 싶으세요?" 물었다. '글쎄...나는 무엇으로 변하면 좋을까?' 요즘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아침저녁으로 들어서인지 바람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오는지 또 언제 가는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초인 같은 바람이고 싶다.
   
 

2014년 두 번째 달이 가고 있다. 많이 부산스럽고 바쁘게 해맞이를 했다. 와우서옥-내가 소속한 인문학공부모임-은 두 달여를 준비한 남부도서관강의를 했고 그러면서 난 도서관에 계신 학교선배님의 부탁으로 청주에 있는 작은도서관 실태조사작업을 했다. 일주일동안 작은도서관 주소지만 가지고 이리저리 찾아다니는데 춥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어찌나 야속하던지.

한 가지 일을 끝내고나면 어느새 새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이 방학이니 서울 미술관에서 열리는 회화전 관람을 계획했다. 조촐하게 아들과 버스로 상경하려 했는데 넓고 깊은 내 오지랖때문에 서울기행 일정을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녔더니만 같이 가자는 지인들이 많아졌다. 결국 버스를 예약하고 식당을 찾아보고 간식을 준비하고 자료집까지 만들었다. 별 생각 없이 시작했는데 준비하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면 "내 발등 내가 찍었구나!"하고 후회스러움이 일기도 했다.

기행을 다녀오고 보니 설날이 다가왔다. 결혼하고 나서 아버님 돌아가신 후부터 명절과 제사 준비는 온전히 내 몫이다. 설 장보기와 친척분들께 드릴 선물 장만을 해야한다. 설 연휴가 시작되면 장본 것 챙기랴, 설이면 남편이 빼놓지 않고 입는 한복 챙기랴, 두 아들 옷가지 챙기랴 바쁘다, 귀에서 바람새는 소리가 나는지도 모르고. 설 차례와 성묘를 끝내고 친정에 들러 집에 오면 설이 지나간다. 매번 별다를 것 없이 지나간다.

그런데 이번에는 설 지내고 집에 도착한 저녁때쯤부터 몸이 이상했다. 기침이 간간히 나오더니 온몸에 힘이 빠지고 충혈된 눈은 감았다 뜰 때마다 천근만큼 무거웠다. 귀는 비행기 날아가는 소리인지 세찬 바람소리인지 머리를 더 아프게 했다. 그 뒤로 일주일간 꼼짝할 수 없었다. 눈이 떠지지도 않았다. 귀는 말소리를 라디오 주파수가 맞지 않아 찌직거리는 소리처럼 들려 선명하지 않았다. 머리가 아프고 묵직하니 일어나지 못했다.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밥을 먹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남편이 들어오는지 나가는지 알 수도 없었다.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가늠할 수 없게 아팠다. 내 평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남편이 해준 죽을 목구멍으로 겨우 넘겼다. 물을 마실 때면 입안에서 쓴 내가 느껴져 저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동안 뭘 하느라 이리 아플 것도 모르고 동동거리며 다녔지. 체력이 바닥나는 줄도 모르고 온몸의 진액을 박박 긁어가면서 뭘 한거지?" 곰곰이 생각했다. 몸뚱이가 힘들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무디고 둔함이 원망스러웠다. 내 미련스러움 때문에 혹사당한 몸에게 미안했다. 자연스럽게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무슨 마음으로 과욕을 부리며 살았는지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해야할 지 알았다. 가볍고 단순하게 살기.

가장 먼저 머릿속을 정리하고 다음으로 벌여놓은 주변의 일들을 정리하고, 느슨하게 생활하기를 시작했다. 아프기 전의 나와 아픈 후의 나는 같지 않다. 지금은 방향을 조금 바꿀 때인 듯하다. 그러면서 덕지덕지 붙어있던 내 욕심과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내 모습과 관계한 타인에 대해 기대하는 내 마음을 하나씩 몸에서 머리에서 가슴에서 마음에서 때내고 있다. 가슴에 쌓였던 답답한 기운이 조금씩 밖으로 새어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기분탓일까, 몸과 마음이 바람처럼 가벼워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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