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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길에 서 있는 벗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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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4월 21일 (월) 16:14:50 김승효 backsteam@nate.com

신부님과 강사님과 주부님(?)이 만났다. 1992년, 대학에 들어간 해이다. 그와 그녀는 과 동기였다. 그 후 그녀는 무사히 졸업을 했고 그는 군대를 다녀와 다른 학교로 편입했다는 소식을 얼핏 들었다. 한참 후에 그가 또다시 신학대학에 입학했고 신부님이 되었다고 했다. 아마도 그와 소식이 끊긴 것이 신학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인 듯하다. 몇 해 전 김수환추기경께서 선종하시고 맨 앞에서 운구를 모시던 그를 TV에서 보고나서야 ‘이제 우리와 다른 길을 가는구나’ 실감했다.

입학하고 나서 강의실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긴 생머리와 또렷한 이목구비의 뽀얀 얼굴이 너무나 예쁜 친구였다. 이름 끝 자가 ‘희’인 동기 세 명이 같이 붙어 다녀서 ‘희자매’라고 불렸던 친구 중에 한명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사진동아리 활동을 해서 모꼬지를 가면 늘 그녀가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녀가 찍어준 사진을 난 지금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결혼 전 대학도서관에 근무할 때 그녀가 사무실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예뻐서 새침할 것 같은 그녀가 시원시원한 목소리와 호탕한 웃음을 가진 에너지 넘치는 아이였음을 그때서야 새삼스레 알았던 것 같다. 그 후로 그녀와 난 같은 청주에 살면서도 오랜 세월 만나지 못하고 살았다. 그녀가 지금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강사님이 되었단다.

학교 다닐 때 나는 선머슴 같았다. 학과공부보다는 학생회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예비역 선배들만 하던 과학생회장도 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좀 더 바쁘고 적극적으로 학창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졸업하고 나서 2년의 짧은 직장생활을 접고 결혼을 했다. 아이를 낳고 가사 일에 전념하는 주부가 되었다.

서로 다른 시간을 보내고 다른 모습으로 다시 만났다. 한참을 잊고 지냈던 그때 그 시절의 빛바랜 사진을 보듯이 서로의 기억을 떠올리며 20대 초반의 우리로 돌아갔다. 우리의 기억은 1996년 이전에 멈춰있었고 그대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 기억 속에 있던 마르고 껑충한 키에 언제나 백팩을 등에 메고 친구들을 몰고 다니던 유쾌한 그 아이는 이제 몸이 두 배로 커진 중후한 모습의 신부님이 되었다. 하지만 내게는 여전히 그 아이가 장난기 많고 재밌는 친구 그대로였다. 사진을 좋아하던 그녀는 고등학생 아들과 중학생 딸아이를 둔 엄마이면서 세련된 모습의 강사님이 되었다. 하지만 내게는 여전히 또렷한 이목구비의 뽀얀 얼굴을 한 예쁜 친구 그대로였다.

서로 만나지 못하고 살아온 시간이 오래이지만 어제 만나고 헤어진 친구처럼 웃음과 수다스러움이 편하고 낯설지 않았다. 지금은 각자 선택한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서로 다른 길에 서서 열심히 살고 있는 오랜 벗을 만나는 일은 참으로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켜켜이 쌓인 기억들을 함께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과 오랫동안 만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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