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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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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7월 24일 (목) 08:39:10 김승효 cbmedia@hanmail.net

며칠 후면 생일이다. 유난히 생일 때가 되면 매번 다르게 느껴지는 똑같은 옛 일들을 생각한다. 어디서 태어났고 어떤 사람들과 살았고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나도 모르게 버릇처럼 떠올린다. 생각하다보면 평소에는 까맣게 잊고 지냈던 옛 추억들이다.

엄마가 막내 동생을 집에서 낳던 일,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소풍가는 사촌언니를 쭐레쭐레 따라 갔던 일, 주말마다 혼자서 버스타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고 계신 대전에 갔던 일,-그때는 지금처럼 강을 건너는 다리가 없어서 버스가 뗏목 배에 실려 옮겨지던 시절이었고, 충북도에서 충남도로 넘어가니 버스도 중간종점에서 갈아타야 했었다- 들이 있었다. 길 양옆으로 수양버들나무가 빼곡하게 늘어져 있고 차라도 지나갈라치면 먼지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다리 아픈지 모르고 10리길을 한 시간 넘도록 걸어서 외가댁에 갔던 일도 있었다. 외가댁에 가면 항상 저고리차림을 하신 백발의 할아버지와 가지런히 쪽진 머리에 비녀를 꽂으신 단정한 할머니가 계셨다. 할아버지께서 소여물을 자르고 쑤실 때면 내가 놀이삼아 거들도록 해주셨고, 할머니께서 누에먹이인 뽕잎을 따러 뒷밭에 가실 때면 나를 데리고 가셔서 누런 막걸리 주전자에 오디를 한가득 따주시곤 했었다. 지금은 두 분 모두 돌아가시고 안계시지만, “승효야! 승효야!”부르시던 목소리가 아직도 아련하게 떠오른다.
   
  ▲ 이미지출처:http://lovebook.tistory.com/213  
 

장난감이 없던 시절이었다. 기껏해야 고무줄과 여기저기서 모은 돌맹이가 전부였던 때였다. 고무줄놀이, 사방치기, 공기놀이, 숨바꼭질 등 친구들만 있으면 놀거리가 천지였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풍습이라며 가로등 불빛아래 모여 작당을 하고 밥을 훔쳐 먹으러 집집마다 돌아다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들의 귀여운 작당(?)을 눈치체시고 다니던 집마다 엄마들이 부뚜막에 밥이랑 반찬을 따로 내놓아주셨던 것 같다.

밤이면 오줌 싸는 줄 모르고 아빠가 만들어주신 구멍 뚫린 깡통과 깡통에 들어갈 적당한 크기의 나무토막을 허리춤에 차고 뚝방길에 서서 쥐불놀이에 열을 올렸었다. 눈이 오면 비료푸대를 들고 산비탈에 올라가 하루 종일 손발 부르트도록 썰매를 타기도 했었다. 여름이면 매일같이 개울가로 멱을 감으러 갔는데 검정색 타이어튜브 하나면 족했다. 올갱이도 잡고 멱 감고 나서 닦아야 할 수건을 그물삼아 고기도 잡고 개구리수영법으로 누가 먼저 건너편 개울가로 가는지 시합도 했었다.

지금도 난 수영장에서 배운 자유형보다 개구리영법을 더 잘한다. 봉숭아꽃이 피면 옹기종기 모여앉아 한약방 할아버지께서 주신 백반가루를 넣고 꽃과 잎을 빻아 손톱에 물들이기를 하고는 다음날 누가 더 잘 들었는지 자랑하던 그때의 기억들이 매번 삼삼하게 떠오른다.

언제나 아련하게 떠오르는 행복한 일만 있으면 좋으련만...산다는 것 자체가 어디 그런가? 어릴 때 장마로 집 안까지 물이 들어와 피난을 갔던 일, 스무 살 갓 넘었을 때 교통사고로 엄마가 수족을 못 쓰시고 2년 넘게 중환자실과 일반병실을 오가며 누워 계시던 일, 결혼하자마자 전셋돈을 사기당해 오도 가도 못하던 일, 빚 갚느라 아이 분유 떨어질까 조바심을 내야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리다.

살다보면 이러저러한 일들로 힘겨울 때가 많다. 그럴 때, 난 예전의 삼삼했던 추억을 떠올린다. 같이 놀던 친구들, 멱 감던 개울가, 썰매 타던 뒷산, 외양간과 누에고치가 가득했던 외가댁, 필통과 상자를 만들어주시던 목수할아버지의 작업장. 이 모든 기억들이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것을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매일매일 난 뿌리 깊게 심겨진 행복 가득한 추억의 힘으로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고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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