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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세 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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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26일 (화) 08:27:03 김승효 backsteam@nate.com

지난 주말 사촌동생이 결혼했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친척들이 모였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일까? 가까운 사람들임에도 왜 그리 낯설게 느껴지던지…. 아흔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낳은 자손이 7남매 그리고 7남매의 자손이 18명. 작은아버지 네 분과 고모 두 분으로 다복한 집안이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삼촌이고 사촌 사이에도 불구하고 남보다 더 멀게 느껴진다. 어느 때부터인가 매번 친척들을 만날 때면 씁쓸한 마음과 함께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다. 할아버지 집은 대전, 우리 집은 보은(회인)에 있었다. 혈압으로 두 번이나 쓰러지셨던 할아버지 때문에 부모님은 그즈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내셨던 같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날 저녁에 우리 집 풍경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 법정스님 사진출처: http://lifeisgood.tistory.com/  
 

온 가족이 저녁을 먹고 이부자리에 나란히 누워서 TV문학관을 보았다. ‘저승새’라는 단막극을 하고 있었다. 노스님과 동자스님 단둘이 절에서 사는데 노스님이 늙어 이승을 떠날 시기를 가늠할 때쯤, 노스님 눈에 저승길로 인도하는 새가 보이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는 얘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서워서 이불로 눈을 가리면서 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고 우리가 대전에 가는 사이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아마도 내가 ‘저승새’를 기억하는 것은 그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리라.

대전 집에서 장례를 치르는 내내 우시다가 실신하는 할머니와 너무 울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고모들과 남자어른인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들이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우는 모습이 무서우면서도 신기했었다. 할아버지시신은 안방에 병풍으로 가리운 채 모셔져 있었고 할아버지 친구 분들이 올라치면 병풍을 제치고 할아버지얼굴을 쓰다듬으며 서럽게 푸념의 말들을 내뱉으며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나는 모든 광경을 우두커니 방안에 앉아 지켜보았던 것 같다. 내 나이 10살, 죽음에 대해 몰랐을 시절이었다.

그 후로도 주말이면 할아버지 집을 빼먹지 않고 갔다. 달라진거라곤 할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것과 집안으로 들어가는 대청에 작은 광목천막이 지어져 있는 것과 할아버지의 영정사진과 향과 초가 켜진 상에 아침, 점심, 저녁 끼니를 대접하듯이 제를 올리는 일이었다. 이렇듯 할아버지의 부재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나에게 익숙한 일이 되버렸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들을 상기하는 끝자락을 타고 내 인생 후반기가 생각나는 것은 인생의 4모작 중 2모작을 끝냈고, 3모작을 시작할 시기임을 알기 때문이다. 법정스님은 세납 43세에 불일암에 홀로 들어가 수행을 시작했고, 단테는 43세에 신곡을 썼으며 데카르트는 43세에 성찰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내년이면 내 나이 마흔 세 살. 마흔 세 살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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