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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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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21일 (수) 18:45:37 심웅섭 shimws2002@hanmail.net

점심 먹은 게 과했는지 속이 더부룩하다. 침을 몇 방 놓기로 했다. 우선 손과 발에 태충과 합곡의 사관을 트고 위장경의 원혈인 함곡을 찌른다. 거기에 족삼리 하나 정도 추가하면 웬만한 소화불량은 봄눈 녹듯 스르르 풀린다. 침을 찌르고 가만히 바라보면 속이 시원해지고 손발이 따뜻해지는 게 느껴진다. 뭔가 막혔던 것이 침 한방에 풀리는 기분이랄까. 참으로 신기하고도 감사한 일이다. 신기한 것은 그 가는 바늘 몇 방에 내 몸이 좋아지는 거고 감사한 것은 그 침을 내가 배워서 스스로 놓게 된 거다.

말로는 쉽지만 처음 내 몸에 침을 찌르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처음 침통에 침을 넣고 톡 쳐서 자리 잡는 거야 약간 따끔할 정도니 참을 만한데 이걸 살 속으로 밀어 넣기가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사실은 끔찍하고 무섭고 겁이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젠 제법 예사롭게 내 몸을 찔러댄다. 하나의 요령을 터득했기 때문인데 찔리는 몸이 아니라 찌르는 오른 손을 나로 인식하는 것이다. 남의 몸에 놓는 건 그야말로 껌이다. 아픈 건 내가 아니니 자리만 정확히 잡고 밀어 넣으면 끝이다.

침을 배우기 시작한 건 일 년 반쯤 전, 아직도 서툴다 못해 병아리 초년병이지만 급한 대로 내 몸과 가족, 때로는 직장 동료들에게 침을 놓곤 한다. 나로서야 배운 걸 실험할 대상, 마루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니 보는 사람마다 찌르고 싶지만 나를 믿고 턱 몸을 맡겨오는 이가 생각보다 적다. 회사에서는 침 맞는 사람에게 침 값을 주겠다고 하는데도 좀처럼 자원자가 없다. 야매에게 몸을 맡길 수 없다는 거다.

야매. 어릴 때 참 많이 듣던 말이다. 주로 이빨 관련해서 야매가 많았는가 싶다. 누구누구는 야매에게 이빨을 했는데 얼마에 싸게 했다더라, 누구누구는 야매에게 이빨을 해서 큰 곤란을 겪는 다더라....... 이래서 내 머릿속에 야매란 말은 무자격자, 값싼 치료비, 의료사고 뭐 이런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내가 바로 그 야매란다. 도대체 야매란 무슨 뜻이며 어느 나라 말인지 궁금하여 사전을 뒤져 봤다. 그런데 어디에도 내가 알고 있는 야매는 없다. 들에 핀 매화, 혹은 촌스럽고 어리석음이라는 해석만 나온다. 그렇다면 야매는 그야말로 말부터 표준어가 아닌 속어, 야매 말이 아닌가?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나는 야매 침쟁이일 뿐 아니라 숫한 분야에서 야매다. 우선 서툰 목수이니 야매 목수요, 야매 농사꾼이요, 야매 오디오 평론가요, 야매 건축가다. 자격증의 유무로 본다면 야매 아빠 야매 남편 심지어 내 전문 분야인 방송제작도 자격증이 없으니 야매다. 어디 나 뿐이랴, 자격증이 없던 시절 수많은 명의들과 장인들과 현인들 중에서 도대체 야매 아닌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그러니 야매란 말이 결코 부끄럽거나 부도덕한 게 아니리라. 그런데 도대체 야매란 말에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칠한 건 누구란 말인가? 집짓고 옷 만들고 차를 손보고, 심지어는 내 몸의 건강을 돌보는 것 까지 모든 걸 전문가에게 맡기고 나는 그저 돈만 벌어서 그 전문가들에게 바치며 소비자로만 존재하라는 건 도대체 누가 만든 법칙이란 말인가?

물론 나는 돈을 받고 침을 놓지는 않는다. 돈을 받고 가구를 만들지도 않고 돈을 벌기위해 오디오를 팔지도 않는다. 그러나 모든 걸 전문가에게 맡기고 돈만 낼 생각은 없다. 내 속에 깊숙이 존재하는 새로운 능력, 감춰진 본성들을 하나하나 깨우쳐 가는 일이 생각보다 짜릿하기 때문이요, 나부터 돈 적게 쓰고 행복하게 사는 일이 바로 세상을 밝게 하는 시작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니 나의 야매 여정은 어디서 그칠지 예측할 수 없다. 야매 작가, 야매 가수, 야매 바리스타......... 그래, 나는 야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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