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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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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22일 (금) 14:03:35 심웅섭 shimws2002@hanmail.ne

딸내미를 공항까지 태워다주고 돌아오는 길, 새벽안개 속 영종대교가 마치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딸은 제 몸집만한 여행 가방을 끌고 그렇게 공항 청사로 들어갔다. "잘 해!" 이 짧은 한마디가 나의 작별 인사였고 딸은 애써 눈길을 외면한 채 "걱정 마"라고 응답했다. 지방대 광고홍보학과를 졸업한 딸이 일본의 한 인력관리회사에 취직해서 떠난 것이다.

남들은 쉽게 말한다. "아유 잘됐네요, 취업난 시대에 졸업하자마자 취직했으니 얼마나 좋아요? 그리고 젊은이들이 국내에서만 취직하려고 하지 말고 해외로도 눈을 돌려야하는데 그런 진취성이 부족하잖아요? 보리는 참 대단하네요." 그러면 나는 적당히 자랑과 겸손을 섞어서 "얘가 나를 닮아서 머리가 좋은가 봐요, 글쎄 겨우 1년 교환 학생하고는 일본어를 배워서 취직까지 했네요. 물론 직장은 그리 대단하지 않지만 취업난 시대에 효도한 거지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그러나 사실 내 마음은 그리 편치 않다. 외국에서 일하고 생활 한다는 게 얼마나 서럽고 힘든 일일지는 미루어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말도 설고 음식도 안 맞고 정서도 다른 사람들 틈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찌 녹녹하겠는가 말이다. 거기에 사실은 딸을 외국으로 내 몬 것이 바로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라는 자책감도 불편함의 원인이다. 그래서 내가 이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은 "잘 해!" 라는 짧은 인사 뒤에 잘라먹은 사과의 말이다.

딸아, 아빠가 올바른 세상을 만들지 못해서 네가 이렇게 우리나라를 떠나야하는구나. 경제개발이니 수출증대니 하는 엄청난 말에 현혹돼서 대기업들을 키우고 자동화를 하고 사람을 줄이고, 그렇게 국가 경쟁력을 키우다보니 이제는 당연히 일해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도 못 주는 세상이 돼 버렸구나. 아빠 세대는 몰랐단다. 그냥 자원도 없고 인구는 많은 우리나라는 그렇게 해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기에, 모두가 잘 살줄 알고 그 말에 따랐을 뿐이란다. 물론 그렇게 해서 미국사람들처럼 자가용도 굴리고 해외여행도 하고, 경제개발의 단물도 좀 받아 마셨지. 그런데 그 대가가 바로 나의 아들 딸들이 일자리와 희망을 잃고 허송세월하거나 그나마 운 좋은 몇몇은 너처럼 외국으로 돈 벌러 나가야하는 혹독한 현실이었구나. 네가 아빠와 아빠세대를 아무리 강하게 비난해도 무어라 변명할 말이 없구나. 아빠가 머리 숙여 사과할게. 정말로 미안해.

그러나 어쩌겠니? 너와 너희 세대에게 주어진 이 혹독한 환경을 너희는 너희만의 슬기와 용기로 극복해내리라고 믿는다. 아빠 세대가, 아빠의 아빠 세대가, 그 아빠의 아빠세대가 나름대로의 난관과 고난을 잘 이겨내고 극복했듯이 말이야. 낯선 타국에서 부디 잘 적응하고 일상을 즐기는 여유를 잃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경쟁에서 이기려고 애쓰기보다는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그런 딸이 되길 바래. 아빠가 “잘 해“라고 한 말은 사실 이런 뜻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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