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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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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3월 08일 (목) 14:53:13 심웅섭 shimws2002@hanmail.net

요즘 TV보는 새로운 재미거리가 생겼다.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뜻밖의 이름들, 바로 성희롱 가해자들이다. 어느 여검사가 시작한 우리나라의 미 투가 빠르게 사회 각 분야로 펴져나가면서 평소에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던 인물들이 하루아침에 까발려지고 추락하고 있다. 인기 연예인에서부터 방송계, 학계, 성직자, 원로시인에다가 최근에는 대권후보로 거론되던 정치인까지 매일 한두 명씩 튀어나오는 이름들. 도대체 그 끝은 어디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 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여러 생각들로 혼란스럽다. 우선 떠오르는 생각은 나를 포함한 남자들이 얼마나 깊은 이중성을 지니고 있는가, 다시 말해서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마침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이기적 유전자”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책의 핵심내용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 어떤 생명체든 결국은 유전자라는 생명단위가 경쟁력 있게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기계장치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아무리 도덕과 지성이 발달한 것 같지만 인간은 결국 본능에 의해 움직인다는 말이다. 이 말은 여자들에게는 마치 성희롱이 본능에 의한 것이니까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핑계로 들릴 것이고 남자들에게는 자신들을 미물에 의해 지배당하는 하찮은 존재로 비하하는 말로 들리겠지만 어쨌든 일리 있는 관점인 것 같다. 기분은 나쁘지만 이걸 인정하는 순간 이해할 수 없던 일들도 해석가능한 문장이 된다. 지체 높은 검사님들부터 성직자와 평소 존경받던 높은 수준의 예술가들까지 가해자였던 일들 말이다.

두 번째 떠오르는 생각은 가해자들이 상당히 억울해할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당시로서는 별 일 아니라는, 있을 수 있는 정도라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어제는 괜찮았는데 오늘은 안 된다는 것은 결국 지금이 성적도덕기준이 변화하는 시점, 일종의 혼란기라는 말이다. 사실 도덕적 기준은 지역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바뀐다. 불과 200년 전만해도 양반이 아랫것들을, 혹은 백인이 흑인을 매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터, 변화의 순간에 비난받아야했던 양반과 백인들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여기에 혹시라도 억울한 남자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 성적 욕구 자체가 죄악시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우, 기득권의 와해가 새로운 세대교체의 기회가 될 거라는 계산까지 두서없이 떠오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 투 운동이 단순히 성적 도덕기준의 변화가 아닌 우리 사회 전반에 변화를 가져 올 거라는 점이다. 빠르게,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분출되는 폭로들을 보면서 나는 거대한 얼음조각이 깨지는 것을 연상하곤 한다. 어떤 힘에 의해 임계점에 달해있던 거대한 얼음이 작은 바늘 하나에 의해 순식간에 균열되는 모습 말이다. 바늘은 여검사, 혹은 모방송사로 볼 수 있겠지만 거대한 힘은 또 무엇일까? 정치 사회 문화 경제의 각 분야에서 당연하던 얼음들을 깨고 녹이는 힘은 무엇일까? 어디까지 갈 것이고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모두들 내 사고의 한계를 넘어서는 질문들이다. 그저 오늘은 또 어떤 얼음이 깨질까 기대하며 TV를 켜는 게 내 일이다. 남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의 순간들을 기대한다고 말하기엔 좀 그렇지만, 성스럽고 반전이 있는데다가 라이브로 진행되는 시대의 드라마(백년에 한번쯤 방영되는)를 외면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참, 앞의 이기적유전자라는 책에는 이런 말도 있다. 유전자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인간에게 최대의 자율권을 주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내 핑계 대지 말고 당신 맘대로 해라. 본능이라는 말로 정당화하지 말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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