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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인생의 주인공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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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04일 (일) 08:14:39 심웅섭 shimws2002@hanmail.net

40일.안식년이 시작되는 내년 1월 1일까지 내가 실제로 회사에 출근해야할 날이다. 사무실 칠판에 매직펜으로 큼지막하게 써 놓고 하루씩 줄여간다. 말년병장 제대날짜 세듯이. 동료들은 의아해한다. 남들은 아쉬워서, 혹은 먹고 살 걱정에 줄어드는 근무기간을 잊고 싶은 심정인데, 뭘 그리 손꼽아 퇴직을 기다리냐는 거다.

나는 1987년 11월에 KBS에 PD로 입사했다. PD가 뭘 하는지도 정확히 모르고 그저 좀 자유롭게 일한다는 친구의 말만 믿고
그야말로 얼떨결에 지원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입사한 방송국 생활은 제법 매력적, 솔직히 말하면 환상적이기까지 했다. 우선 월급이 많았다. 첫 봉급이 70만원, 재벌그룹 초봉이 30만원선이던 걸로 기억한다. 거기에 복장과 출근시간과 일의 내용이 자유로웠고 사회적으로도 제법 인정받았다. 갓 입사한 새파란 청년이 연예인에서 대학교수, 예술인, 정치가까지 손쉽게 전화를 하거나 만날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미꾸라지가 용 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좋을 수는 없다는 걸 서서히 깨달았다. 저축과 재테크에 관심이 없으니 돈은 모이지 않았고 자유로운 복장과 일은 사실은 자유롭게 고생한다는 뜻이었으며 사회적인 인정은 무거운 책임감의 다른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늘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갖다보니 지식과 사고는 한없이 얕은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정말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엄숙한 행사장에서는 취재를 핑계로 투명인간인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왔다갔다 하고, 낯선 사람을 만나면 어느새 스토리를 구성하며 휴먼다큐를 찍고 있고, 경치 좋은 곳이나 여행지에서는 머릿속으로 카메라 앵글과 편집을 떠올리고, 하다못해 영화를 봐도 이런저런 비평을 해대고…. 한마디로 주인공이나 참여자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관찰자로서만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내가 이런 사실을 깨달은 것은 40대 초반, 명상과 생태주의에 관심을 갖고 나서였다. 명상을 하면서는 나의 존재가 굳이 무슨 일을 하거나 어떤 사회적 평가를 받느냐와 관계없이 그 자체로도 소중하다는 것을, 생태주의를 통해서는 자발적 가난과 소비의 억제가 미덕이며 그것만이 바로 세상을 바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을 배웠다. 둘이 서로 다른 듯 비슷한 얘긴데 한마디로 누구를 변화시키거나 뭔가를 (가족, 이웃,국가, 이념, 종교)위해서 살지 말고 너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주인공이 되어 살아라, 더 줄이자면 니나 잘해, 이런 말이 될듯 싶다.

나도 정년퇴직 후에는 남은 인생을 주인공이 되어, 내가 살아보고 싶었던 방식으로 살아보고 싶다. 다른 사람과 사회현상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일에서 나와 내 아내와 자연과 영성에 좀 더 시선을 돌리고 싶다. 농사짓고 목공하고 음악 듣고 명상하고 변덕이 나면 못했던 공부도 하고, 돈은 적게 쓰면서도 행복한 일을 하는, 한마디로 화가(화려한 가난뱅이)로 살아보고 싶다.

퇴직을 한다니 남들은 내게 이런저런 제안과 충고를 하기도 한다. 카페를 열어라, 취직을 해라, 봉사를 해라......그런 분들에게 한마디 드리고 싶다. 저기요...... 제가 평생 처음으로 제 인생의 방향을 확실하게 정했거든요, 그리고 나의 미래에 대해서 엄청 가슴이 설레거든요. 그냥 지켜보시다가 가끔 구경이나 와 주시면 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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