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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가 힘을 받으려면
[오후3시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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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23일 (목) 07:30:12 한재학 cbmedia@hanmail.net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네 번 있다. 고등학교, 군대, 태국과 터키를 여행 했을 때 각각 한번씩. 짧게는 7년에서 길게는 16년이 흘렀지만 각각의 사건은 아직도 생생하다. 사회적으로 남성, 이성애자, 충청도 등 성·젠더·지역 차별에서 양지에 있었지만 해당 순간에는 왜소한 고등학생, 이등병, 동양인 등 상대적 약자였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가 아니었기에 그 순간이 지나자 사회 통념에 동화됐다. 그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태어나자마자 양지에 서면 본인이 속한 사회 통념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른다. 양지에 서 있는 자들을 떠받들고 있는 타자들이 눈에 들어와야 비로소 자신의 위치가 인식 되는데, 아무런 재제 없이 그러기는 불가능하다. 나아가 사회에서는 ‘사회화’라는 이름으로 그 구조를 공고화하고 재교육 한다. 그래야 사회가 구성된다고 믿는다.

‘미투’가 대한민국을 강타한지 일년 반이 흘렀다. 그 사이 남자들은 여자들을 대하기가 조심스럽고 어려워졌다는 말도 듣고 글도 봤다. 그러나 여자들은 어릴때부터 남자들을 대하기가 조심스럽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고 일갈한 글을 보며 아직도 인식과 입장 차이에 따른 간극은 작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미투를 경험하면서 뼈아팠던 것은 남용 됐을 때다. 대표적으로 김흥국, 양예원 사건이 있다. 이 사건들은 어떤 현상이 새로 생길 때 나타나는 부작용으로 이은택, 조민기, 조재현 사건과는 결이 다르다. 이런 일들은 경험이 쌓일수록 줄어든다. 즉, 시간 문제다.

이보다 큰 문제는 ‘정상인’들의 잘못된 인식이다. 선거 때 악수를 청하자 미투라는 말을 내뱉고 손을 거둔 여성, 여성에게 어떻게 말을 해도 미투가 될 수 있다며 펜스룰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남성 등을 집적 대면하고 있으면 심경이 복잡하다. 그 자리에서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변하지도 않는다. 이는 기성세대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20-30대도 남녀구분 없이 이야기하다가 성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미투 걸린다고 조심하라고 하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한다.

어쩌면 미투의 가장 큰 적은 보통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이 확대 재생산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미투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적재적소에 사용되어져야 한다. 성범죄를 주변에 알리고 신고하는 미투와 일상생활에서 접촉이나 대화를 미투로 치부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성적으로 분하고 억울한 일이 있으며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야 한다. 감정이 앞서고, 다시 기억하는 게 힘들지만 일이라는 건 감정으로 될 일은 아니다.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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