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학습 이름이라도 바꾸자
어려서부터 존경하던 윤구병선생님이 청주에 오셨다. 그분의 책이나 글을 참 많이 읽은 것 같다. 원래 평이하고 구수해서 그런지 특별한 내용은 기억나는게 없다. 그래도 끌리는 것을 보니 묘한 매력을 가진 분이다. 보리출판사 책이 그렇다. 참 쉽게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가슴에 진하게 남지 않더라도 푸근하고 따뜻하게 살갑게 감정으로만 남아 있다.
역시 이날 강의도 그렇다. 평소에 생각하던 그런 얘기들을 구수하게 풀어가신다. 특별한게 없지만 공감하고 속시원하고 가슴에 뭔가 뿌듯하고 안도감 같은게 밀려온다. 그날 하신 말씀 중에 평소 참 속상했던 문제도 있다. 야간자율학습 문제다.
야간자율학습이 정말 자율학습일까? 이걸 과학적 방법으로 입증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미 누구라도 다 알 정도로 강제적인 학습 아닌가? 자식을 중고등학교 보내 본 부모들은 자식들이 울면서 야자(야간자율학습을 아이들은 이렇게 불렀다) 빼달라고 호소하는 걸 들어보지 않았는가? 공부 잘하는 누구누구는 과외나 학원 간다고 빼주는데 나는 빼달라고 얘기하니 부모 확인받아오라고 했다면서..... 부모가 사정 얘기해도 쉽게 빼주지 않는다. 병원 진단서 떼보내야 비로소 야자에서 빼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학교와 교사들의 고충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야자의 필요성도 공감한다. 1978년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그때는 정말 밤에 공부할 공간이 필요했다. 주번교사는 큰 몽둥이를 들고 교실에 남아 공부하는 학생들을 찾아 내쫓았다. 에너지절약이라는 정부시책에 호응하기 위해서였다. 2011년 지금 교사들은 학부모들의 등쌀과 일제고사 성적 올리라는 보이지 않는 상급자들의 명령과 상위권 대학에 많은 학생을 보내라는 압박 때문에 강제로 아이들을 밤 열시나 열한시까지 가두어 놓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 하나 더... 학생들을 풀어놓으면 사회적으로 비행도 많이 발생할테니 사회보안차원에서....
정말 그렇다면 이름이라도 '야간학습'이라고 바꾸자. '자율'이라는 수식어는 빼자. 이들이 자라서 감금을 보호라고 쓸지도 모른다. 획일을 다양성이라고 쓸지도 모른다. 억압을 자유라고 쓰면 어떻게 하나? 강제할당을 배려라고 표현하면 맞는다고 채점해야 한다.
야자나 학교의 강제적인 보충수업에는(학교측은 학부모의 동의서를 받아 놓고 있다. 담임교사나 교장이 직접 전화하면 배짱좋게 동의를 거부할 수 있는 학부모는 거의 없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문제를 안고 있다. 아동 청소년에 대한 사회복지전달체계는 학교와 사회복지시설로 이원화되어 있다. 복지부의 감독과 지원을 받는 사회복지시설에서는 방과 후 아동 청소년을 위한 특기적성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다. 기초학습을 보충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저녁 급식도 준비해 놓고 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밤늦도록 있다면 어떻게 될까? 복지시설에서 준비한 프로그램과 식사는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다.
만약 사회복지시설의 프로그램이 무기력해지면 결국에 가서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한 나라의 복지체계가 무력화 되고 무너진다면 엄청난 사회적 후퇴를 감수해야 한다. 교육현장이 정말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밤늦게까지 수용하고 있어야 한다면 새로운 정책을 세워야 한다. 아동 청소년에 대한 복지체계를 복지부에서 교육부로 이관해야 한다.
결론은 단순하다. 교육을 법에서 정한대로 하거나 현행대로 할 것 같으면 복지도 교육부에 넘겨야 한다. 지금 이 현실은 국민들의 세금을 정말 잘못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름을 현실과 상응하도록 붙이는 일부터 해보자.
어려서부터 존경하던 윤구병선생님이 청주에 오셨다. 그분의 책이나 글을 참 많이 읽은 것 같다. 원래 평이하고 구수해서 그런지 특별한 내용은 기억나는게 없다. 그래도 끌리는 것을 보니 묘한 매력을 가진 분이다. 보리출판사 책이 그렇다. 참 쉽게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가슴에 진하게 남지 않더라도 푸근하고 따뜻하게 살갑게 감정으로만 남아 있다.
역시 이날 강의도 그렇다. 평소에 생각하던 그런 얘기들을 구수하게 풀어가신다. 특별한게 없지만 공감하고 속시원하고 가슴에 뭔가 뿌듯하고 안도감 같은게 밀려온다. 그날 하신 말씀 중에 평소 참 속상했던 문제도 있다. 야간자율학습 문제다.
야간자율학습이 정말 자율학습일까? 이걸 과학적 방법으로 입증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미 누구라도 다 알 정도로 강제적인 학습 아닌가? 자식을 중고등학교 보내 본 부모들은 자식들이 울면서 야자(야간자율학습을 아이들은 이렇게 불렀다) 빼달라고 호소하는 걸 들어보지 않았는가? 공부 잘하는 누구누구는 과외나 학원 간다고 빼주는데 나는 빼달라고 얘기하니 부모 확인받아오라고 했다면서..... 부모가 사정 얘기해도 쉽게 빼주지 않는다. 병원 진단서 떼보내야 비로소 야자에서 빼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학교와 교사들의 고충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야자의 필요성도 공감한다. 1978년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그때는 정말 밤에 공부할 공간이 필요했다. 주번교사는 큰 몽둥이를 들고 교실에 남아 공부하는 학생들을 찾아 내쫓았다. 에너지절약이라는 정부시책에 호응하기 위해서였다. 2011년 지금 교사들은 학부모들의 등쌀과 일제고사 성적 올리라는 보이지 않는 상급자들의 명령과 상위권 대학에 많은 학생을 보내라는 압박 때문에 강제로 아이들을 밤 열시나 열한시까지 가두어 놓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 하나 더... 학생들을 풀어놓으면 사회적으로 비행도 많이 발생할테니 사회보안차원에서....
정말 그렇다면 이름이라도 '야간학습'이라고 바꾸자. '자율'이라는 수식어는 빼자. 이들이 자라서 감금을 보호라고 쓸지도 모른다. 획일을 다양성이라고 쓸지도 모른다. 억압을 자유라고 쓰면 어떻게 하나? 강제할당을 배려라고 표현하면 맞는다고 채점해야 한다.
야자나 학교의 강제적인 보충수업에는(학교측은 학부모의 동의서를 받아 놓고 있다. 담임교사나 교장이 직접 전화하면 배짱좋게 동의를 거부할 수 있는 학부모는 거의 없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문제를 안고 있다. 아동 청소년에 대한 사회복지전달체계는 학교와 사회복지시설로 이원화되어 있다. 복지부의 감독과 지원을 받는 사회복지시설에서는 방과 후 아동 청소년을 위한 특기적성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다. 기초학습을 보충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저녁 급식도 준비해 놓고 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밤늦도록 있다면 어떻게 될까? 복지시설에서 준비한 프로그램과 식사는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다.
만약 사회복지시설의 프로그램이 무기력해지면 결국에 가서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한 나라의 복지체계가 무력화 되고 무너진다면 엄청난 사회적 후퇴를 감수해야 한다. 교육현장이 정말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밤늦게까지 수용하고 있어야 한다면 새로운 정책을 세워야 한다. 아동 청소년에 대한 복지체계를 복지부에서 교육부로 이관해야 한다.
결론은 단순하다. 교육을 법에서 정한대로 하거나 현행대로 할 것 같으면 복지도 교육부에 넘겨야 한다. 지금 이 현실은 국민들의 세금을 정말 잘못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름을 현실과 상응하도록 붙이는 일부터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