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쌓인 산의 푸른나무 - 아이비와 엠비

하늘소리
2011-01-14
조회수 7670
눈 쌓인 산에 푸른 나무 - 아이비와 엠비

제주시 인근에 절물오름이 있다. 오름이야 낮은 산을 말한다고 다들 알고 있다. 절물은 이름이 쉽게 짐작가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 어렵게 생각해서다. 절의 샘물이 좋아서 사람들이 그 일대를 절물이라 불렀단다. 이른 새벽에 절물오름 전망대를 향해 눈길을 헤치며 걸었다. 오름 입구에 다다르자 흰 눈밭에 늘 푸른 나무가 널려 있다. 환상이다. 눈 속에 팽나무처럼 보이는 30년 이상은 됨직한 우람한 나무들이 가랑잎과 단풍잎 중간 크기쯤으로 보이는 푸른 잎을 달고 늘어서 있다니 제주에서 보는 비경이다. 그것도 절물오름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진경이다. 아무도 없는 새벽 산에 혼자서 오른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해뜨기 전인데도 온통 발목이 푹푹 빠지는 눈 때문에 주위는 환하다. 중턱쯤 오르니 눈보라가 거세진다. 잔뜩 털모자를 뒤집어쓰고 등산로 따라 매어 놓은 밧줄을 따라 오른다. 정상에 올라도 시야는 바로 앞이다. 가끔 바람이 세차게 불어 멀리 보일 때도 있으나 떠오르는 장엄한 태양을 보는 것은 틀렸다. 눈밭에 솟아 오른 조릿대 잎에 렌즈를 댔다. 이 취위와 눈보라 속에서도 꽃눈과 잎눈을 키우는 나무를 보니 대견하다. 초점을 맞추기 힘들지만 열심히 꽃눈과 잎눈을 찍었다.

내려오는 길은 바람이 아래에서 위로 치켜 몰아치는 바람에 똑바로 걸을 수도 없다. 옆으로 비켜서서 게걸음으로 내려온다. 그래도 틈나는 대로 눈 속의 조리대나 겨울눈, 모양 좋은 나무를 찾아서 셔터를 눌렀다. 배터리가 얼까봐 찍고 나면 카메라를 품속에 넣었다. 오름 입구까지 내려오니 바람도 잔잔하고 다시 푸른 나무가 펼쳐져 있다. 이번에는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그렇게 왕성하게 푸른 잎이 우거졌는데 어떤 가지는 말라 있다. 복병이다. 위장한 적군이다. 아, 각자 이 포위망을 뚫고 약수터에서 다시 만나자. 갑자기 머리 속에서 연개소문이나 대조영 시절의 사극이 떠오른다. 저놈의 정체는 식물계 속씨식물군 진정쌍떡잎식물군 국화군 미나리목 두릅나무과 송악속의 벽이나 다른 나무를 타고 오르거나 땅을 기는 늘 푸른 덩굴나무 아이비다. 참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는 저놈에 비하면 정직한 편이다.

지구의 한 쪽 반도 땅에 기생하는 개악속의 엠비도 아이비와 비슷한데 주로 강을 파헤치거나 콘크리트로 쳐 발라 번지르르하게 위장하여 녹색성장이라고 우기는 것을 즐기며 필요한 만큼 기생하여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전체 숲을 친인척이나 심복으로 장악하여 초기에는 겨울에도 푸른 나무가 우거진 것처럼 보이게 하나 종당에는 숲의 아름드리까지 고사하게 만드는 특색이 있다. 후세에 숲이 망하거나 피폐해지는 것은 관심이 별로 없다. 숲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개악 속의 엠비를 숲에서 제거할까 연구 중에 있으나 아직 특별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금년은 특히 눈보라가 거세다. 숲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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