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량 업그레이드

하늘소리
2010-11-16
조회수 7618
용량 업그레이드

새로 산 카메라가 말썽이다. 몇 십장 촬영하면 배터리가 나가버린다. 배터리를 새로 사서 바꾸니 이번엔 메모리 용량이 차버린다. 일단 돈을 들여서 충전용 배터리를 추가로 구입했다. 작은 아들에게 메모리카드도 하나 얻었다. 아쉬운 대로 백 여 장씩 촬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이 한 떼거리로 밀어닥쳤다. 몸이 무척 피곤해서 간이침대에 누워 불가의 간화선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거 아무거나 하라고 했더니 이면지를 찾아다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쓴다. 다슨걸 내게 내미는 걸 보니 읽어달란 이야기 같다. 제법이다. 목소리 가다듬어 낭송해 주었다.

다음 시간이 요가 시간이라 모두 올라가 버렸다. 아이들이 있던 자리를 보니 난리도 아니다. 여기저기 책이 나뒹굴고, 연필, 지우개 책상 밑에 굴러다닌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과일과 사탕, 음료수는 거의 초토화되었다. 사탕봉지는 사방팔방 끈적거리며 굴러다닌다. 인내의 한계가 최고조에 달한 것은 다기다.

베트남에서 사 온 연꽃차를 마신다고 찻주전자에 차를 따르다 너무 많이 따랐나 보다. 주방에 음식물 쓰레기 넣는 통이 있는데 그걸 몰랐는지 변기에 버렸다. 찻잔을 씻고, 쓰레기 봉지를 가져다 쓰레기를 주워 담고, 흩어진 물건을 제자리에 정리하고, 바닥을 걸레로 닦았다.

고3인 조카딸이 이 모습을 보더니 아이들이 그렇게 좋으냐고 묻는다. 참 속도 모르는 녀석이다. 내가 참을 수 있는 한계점 가까이 왔는데 나는 부단히 참을성의 한계를 늘려왔을 뿐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어지르고 저지레를 하면서 자란다. 다만 하나하나 치우고 정리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물건을 용법대로 잘 사용하는 것도 가르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세련된 청년으로 자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하는 행동에 내가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가 달라진다. 잘 참아주고 차분하게 하나씩 가르치면 그 아이들도 세상일을 그렇게 처리하며 살아간다. 내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면 제 친구나 동생들에게 말투까지 똑같이 흉내 내며 소리 지른다. 그들을 비난하면 그들은 절망감과 불신 속에서 세상을 불행하게 살아간다.

사람은 누구나 건강하고 기분 좋을 때는 너그럽다. 참을성도 많다. 그러나 몸이 힘들고 언짢은 일이 많을 때나 배가 고플 때는 짜증이 늘고, 신경질적이고, 조그만 일에도 화를 잘 낸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참을성의 용량이 크다면 조금 덜 화를 내며 살 수 있다. 이참에 카메라 배터리 용량도 늘리고, 메모리 용량도 늘려야 하겠다. 그리고 젤로 중요한 참을성 용량도 대폭 업그레이드 해야겠다. 요가수업에 끼지 못한 유치원생 시윤이가 남아서 소리 내서 동화책을 읽고 있다. 설거지 얼른 끝내고 “그래 목소리도 참 좋구나. 나중에 성우가 되거나 탤런트가 되면 좋겠다.”고 한 마디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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