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자는 뻔뻔해야 한다.

하늘소리
2010-10-14
조회수 7560
연주자는 뻔뻔해야 한다.

함석헌선생의 글을 20대 초반에 읽으며 참 야릇함을 느꼈다. 의사, 역사학자, 시인, 철학자, 신학자 등등 되고자 했던 것이 참으로 많으셨는데 제대로 이룬 것이 한 가지도 없다는 말씀이 그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모두 다 충분히 이루신 것 같은데.....

요즘 내 생각이 그렇다. 교사가 되고 싶었다. 파일럿이 되고도 싶었다.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다. 사회학자도 되고 싶었다. 문학자가 되기를 꿈꾸던 시절도 있었다. 만화를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그런데 웃긴다. 법학자나 법률종사자가 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법무사로 밥을 먹고 살았다. 요즘은 사회복지학자가 되고 싶다. 체육이나 음악을 가지고 뭘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젊은이들에게 수영강습을 하기도 한다. 한 때 우수한 수영모임의 카페지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국악예술단의 단장을 맡고 문화예술 사회적기업을 시도해 보고 있기도 하다. 꽤 오랫동안 단소와 소금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역시 그게 직업은 아니다. 전문가도 아니다. 그냥 좋아서 하고 교양으로 할 뿐이다. 실패하거나 연주가 서툴다고 밥을 굶지도 않는다. 그러다보니 정말 어느 하나도 제대로 이룬 것이 없게 되었다. 돌발성난청과 척추융합술, 베이커씨스트 제거수술 등으로 쇠약해 진 이후 운동이나 연주는 거의 하지 못한다. 가끔 시조창 반주가 없어 대금이 아닌 평조단소로 반주를 할 때가 있다. TV화면을 통해 연주소리를 들으면 보이지 않는 떨림이 느껴진다. 긴장하고 떨면서 연주한 흔적이 역력하다.

전문 연주자도 비슷하겠지만 취미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무대에 올라 제 기량의 절반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서 처음 제자를 무대에 올릴 때 선생님들이 그런다. “연주자는 뻔뻔해야 돼. 관객은 아무 것도 몰라. 틀려도 틀린 줄 모른다고 생각해.” 그렇게 당부해도 초급연주자는 약간의 실수 때문에 당황해서 나머지 연주를 어떻게 했는지도 모른 채 서두른다. 소리도 약해지고 빨라진다. 수많은 무대경험을 통해 차츰 극복되지만 역시 나는 아마츄어일 뿐이다.

그 다음 선생님들이 당부하는 말씀이 있다. “자기 소리에 취하지 마라. 분위기 잡고 혼자서 연주하다 보면 자기 소리에 취한다.” 악기를 배운지 얼마 안 되어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자기 소리에 취하는 것이다. 남들은 도저히 못 들어 주는 소리인데 혼자 도취해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말씀은 악기뿐만 아니라 모든 인생살이에도 적용된다. 늘 객관화 시켜보고, 자기 생각이나 수준이 어디쯤인지 가늠해 보아야 한다. 다른 이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내 생각에 취해 고집으로 동료를 피곤하게 해서는 안 된다.

모쪼록 첫 무대를 갖는 樂而不流 회원들이 그간 배우고 연습한 곡들을 시민들께 선보이고, 사랑받기를 바란다. 또 많은 시민들이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주며 국악에 관심을 불러 일으켜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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