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나무와 동백꽃

하늘소리
2010-08-26
조회수 25039
생강나무와 동백꽃

뒤늦게 공부하는 재미에 빠졌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학업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여 학력이 복잡하다. 대학에 입학한 후 제적되었다가 10년도 더 뒤에 방송대학에서 졸업시험을 거쳐 간신히 대학졸업장을 얻었다. 그로부터 15년도 더 뒤에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때 난생 처음 열심히 공부해 보았다. 대학원 졸업 후 다시 사회복지사에 도전해서 사이버대학을 통해 학점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신청해서 발급을 기다리고 있다. 요즘엔 초급 숲해설가 교육을 받고 있는데 강의 내용이 훌륭해서 지루한 줄 모른다.

숲에 대해 배우다보니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얽힌 이야기가 생각난다. 소설은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핀 산골에서 사춘기 소년과 소녀의 사랑을 이야기의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들 간의 갈등은 사랑에 갓 눈뜨기 시작한 점순이의 애정공세를 주인공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다. 이성간의 애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 적극적인 성격의 '점순이'와 아직 이성관계에 맹목인 좀 어리숙한 성격의 '나'를 대비적으로 설정함으로써 해학적인 싸움을 벌이게 한다.

소녀는 구운 감자로 유혹하기도 하고, 소년의 닭에게 해코지를 하기도 한다. '바보' '배냇병신'이라는 악의 없는 그러나 다소간 원망이 섞인 욕설로 그의 관심을 유도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눈치 없는 소년은 소녀의 속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화만 낸다. 마침내 소녀는 소년을 끌어안은 채 동백꽃 속에 파묻히고, 소년은 그제서야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해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 (네이버 백과사전)

여기에 나오는 동백나무는 생강나무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생강나무는 암수딴그루로 3월에 자잘한 노란색의 꽃이 꽃줄기 없이 가지에 붙어서 잎보다 먼저 핀다. 열매는 장과로 9~10월에 녹색에서 붉은색으로 그리고 검은색으로 익는다. 동백나무처럼 열매에서 기름을 얻는다. 꽃과 잎, 가지에서 생강 같은 알싸한 냄새가 난다.

우리가 아는 동백꽃은 겨울에 붉게 피는 꽃이고, 남해안 바닷가에 주로 서식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산골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 동백꽃이 등장하니 너무 이해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강원도 아리랑에 ‘아주까리 동백아 여지를 마라. 산골의 처녀가 대난봉 난다.’ 란 구절에서도 동백이 등장하니 어안이 벙벙했다.

국립국어연구원에도 전화해 보고 대학교 국문과 교수에게도 전화해 보고 노력했지만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다 시골에 살 때 군 도서관에서 일주일 동안 식물도감을 뒤진 끝에 동백은 생강나무임을 알아냈다. 생강나무가 산동백이라 불린다는 사실을 알아냈을 때 참 기뻤다.

연세가 높은 이모님 댁을 방문해서 근처 산을 올랐다. 민비가 난을 피해 충주 어딘가로 내려와서 올랐다는 그 산이다. 이른 봄 집 곁의 개울가에 산수유가 노랗게 피었는데 산수유와 비슷한 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 산수유는 집근처에 많은 이른 봄 노란 꽃이고 줄기가 거칠다. 동백(생강나무)은 비슷한 시기에 피는데 모습이 흡사해서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다만 깊은 산 속에 많이 피고 줄기가 매끈하다.
이모님은 그 꽃을 보시더니 ‘동박’이 많이도 피었다고 하신다. 옛 어른들은 동박이라 하시면서 머릿기름으로 썼다고 한다. 처음엔 바다동백으로 머릿기름을 짜서 사용했는데 일반 백성은 값이 비싸서 사용을 못하다 생강나무 열매에서 기름을 짜서 머릿기름으로 사용했단다. 그러다 생강나무는 동백나무로 불리게 되었고, 오히려 산동백(생강나무)이 품질이 우수하자 궁중이나 고관대작들이 산동백기름을 사용하고 일반 백성들은 그 동안 사용하던 산동백의 값이 올라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속이 상한 백성들이 그 후로 생강나무를 산동백이라고도 불렀지만 개동백이라고도 불렀다.

요즘 일하다 보면 초등학생들이 문제집을 가지고 와서 물어보는데 도무지 답을 모르겠다. 가령 아버지 쪽의 친척인 고모, 삼촌, 할아버지 등을 무엇이라고 부르고, 어머니 쪽의 친척인 이모, 외할머니, 외삼촌 등은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하는 문제이다. 초등학교 1학년 문제에 부계혈족과 모계혈족 이라는 답을 요구하는 문제를 내다니 정신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답안지를 어렵게 구해보니 아버지 쪽 친척은 친가라고 하고 어머니 쪽 친척은 외가라고 하는 것이 정답이란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이런 식으로 가르치는 교과과정이 정말 나쁘다. 장인 장모에게 이제는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른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도 그냥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른다. 그게 크게 잘못된 일도 아니다. 오히려 모계 친족이 더 가깝고 처가를 본가보다 더 자주 왕래하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그런 것은 굳이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아도 생활 속에서 그냥 알면 되는 것들이다. 손바닥 맞아가며 배우는 가족관계나 호칭이 평생 즐거울 수 있을까? 한쪽 부모와 사는 아이들이나 외조부모와 사는 아이들이 외할머니를 할머니라고 답지에 적었다고 틀렸다고 손바닥을 때리는 교육이 정말 싫다. 그렇게 문제집 많이 풀어 출제자가 정한 답만 줄줄 외는 아이가 우수한 아이라고 평가받는 이 제도 정말 싫다.

시를 배워도, 소설을 배워도 그냥 재미있게 배우면 안 될까? 생소한 단어나 그 시절의 시대상이나 배경 정도만 재미있게 들려주고 나머지 감동은 각자에게 맡겨둘 수는 없을까? 아마 훗날 오늘의 교육을 일컬어 개교육, 개학교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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