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속의 정직을 위하여

하늘소리
2010-07-09
조회수 8736
청주에서 법무사업을 개업한 지 7년을 넘기면서 회의가 일었다. 일에 보람을 느끼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모멸감이 든 것은 탈법적인 방법으로 조세나 각종 부담, 채권자의 추심행위를 피해가려는 사람들에게 많은 상담을 해 줄 때다. 성품상 누구를 막론하고 찾아오는 사람에게 아는대로 알려주고 상담해 주는 관계로 어떻게 알고 오는지 그런 사람들도 많이 온다.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해서 많은 매출을 올렸지만 이익을 내는 일에 서툴러서 빚을 많이 떠안았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고 떠밀어서 어쩌지도 못하는 이들의 사건을 문을 닫는 순간까지 처리해서 감사인사를 받은 일도 수없이 많다. 그런 분들을 볼 때 청주에서 문을 닫는 일이 마음 아프기도 하다.

법무사를 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정리하려고 한다. 그러기에 앞서 법원공무원 노동조합(당시는 서울법원의 준비위원회)에서 발행하던 '우리법원'이란 신문에 실린 법원생활회고 글을 먼저 읽어 보고 다음에 법무사 생활을 정리하는 글을 싣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먼저 우리법원에 실린 글의 원본글(신문보다 분량이 많다)을 소개한다.



[원본 메세지] 전국법원공무원사랑방(http://cafe.daum.net/court2002/)
제 목 : 우리법원에 실린글 원문
날 짜 : 2003/06/21 12:41:33
내 용 : 우리법원 5호에 실린 제글의 원문입니다. 신문보다 약간 내용이 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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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생활을 되돌아보며 직원들 앞에서 퇴직 인사를 할 때 나보다 근무를 적게 한 직원은 인사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웃으면서 인사를 하는 나는 그보다 법원에 정이 없었나 하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법원을 퇴직한지 두 달이 가까워 간다. 왜 벌써 공무원 생활을 접었는지 후회가 들기도 한다. 법원직원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몇 가지 내가 법원공무원으로 살아오면서 지침으로 삼았던 것들을 소개한다.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도 곁들여 적는다.

**돈을 저축하지 않는다.**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몇 차례 큰 질병으로 병원생활을 한 적이 있다. 건강이나 목숨을 잃으면 돈이나 재산, 심지어 가족들까지 의미가 없어진다. 또한 물질적 재산은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낭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없어지지 않는 재산은 무엇일까? 건강을 위해 투자하자. 몸에 익힐 수 있는 기능과 지식을 익히자.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마라톤과 수영을 시작했다. 아내는 새벽에 영어학원을 다녔다. 나는 저녁에 국악학원엘 다녔다. 아내의 영어학원 과정이 끝나고 함께 국악학원에 다녔다. 나는 대금을 하고 아내는 해금을 배웠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균형 있게 활동한다.**

요즘 인터넷을 모르는 분들이 없다. 나는 컴퓨터 통신을 88년부터 시작했다. 우리나라 컴퓨터 통신의 역사와 더불어 통신을 시작한 셈이다. 주위에서 컴퓨터를 구경도 못하던 시절에 할부로 컴퓨터를 들여놓고 애드립카드(사운드카드)를 달아 전축에 연결해 놓고 쥬크박스로 음악을 들었다. 유치한 자작시를 컴퓨터로 출력해서 벽에 죽 붙여 놓았다. 유명한 글귀를 확대해 연속지로(양쪽에 구멍이 뚫려 연속해서 출력이 되는 전산용지) 인쇄해서 족자처럼 걸어놓기도 했다.

이런 컴퓨터와 통신 전력을 가졌으니 생활 중에서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뒤늦게 통신에 맛을 들인 사람들이 밤늦도록 통신에 매달리는 일이 많다. 때로는 세상일에 관심을 끊고 가상의 세계에서만 사는 사람도 많다.

온라인은 분명 오프라인활동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수영모임을 한다면 수영을 하는 것이 주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수영모임을 위한 홈페이지나 카페를 인터넷에 만들었다면 모임을 위해 공지사항을 전하고 수영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회원 사이의 친목과 의사소통을 위한 정도로 이용해야 한다. 유령처럼 인터넷에서만 갖가지 글을 퍼다 옮기고, 수많은 글을 쓰기만 하고 정작 수영을 위한 모임에는 참가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활동을 균형 있게 한다면 인터넷 중독을 막을 수 있다.

**돈, 지식, 명예, 지위 중 하나만 선택한다. **

돈을 벌기 원한다면 부업을 하던지, 사직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해야 한다. 높은 지위를 원한다면 승진시험공부를 일찍부터 시작해야 한다. 또한 근무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부서를 지원해서라도 가야한다. 승진이 비교적 빠른 법원으로 전출을 신청해야 한다. 명예를 원한다면 주변을 깨끗이 해야 한다. 생활도 깨끗하게 해야 한다. 주변의 애경사를 잘 챙겨야 한다. 그리고 단체나 조직의 직위를 맡아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지식을 원한다면 많은 책을 보고 토론에 참여하고 글을 많이 써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들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명예와 돈을 함께 추구할 수는 없다. 돈과 명예를 함께 얻기는 어렵다. 그건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고,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급행료를 많이 받는 자리에 가서 청렴한 공무원의 명예를 얻기는 힘들다.

겉으로는 청렴한 체하며 이것저것 활동을 많이 하며 돈을 쓰기 위해 교활한 방법으로 돈을 조달하는 직급 높은 이들의 추악한 모습을 닮지는 말자. 이 아무개는 집행에 관한 권위자다. 김 아무개는 정말 청렴한 사람이다. 박 아무개는 참 빨리 사무관 달았어. 서 아무개는 참 재복이 있어. 이들 중 한 가지 소리만 들으면서 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을 위해 다른 것은 아깝지만 버리자. **

여행 중에 잠만 자는 사람, 고기 구워먹을 생각만 하는 사람, 무슨 옷 입을까 고민하는 사람, 어떻게 화장할까 고민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한다.

여행은 무엇을 볼까, 어떻게 볼까, 어디까지 볼까 하는 문제로 고민하고,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기록하는데 온힘을 다 쏟아야 한다. 때로 여행 중에 빵으로 끼니를 때울 수도 있다. 더 많은 것을 보기 위해....

운동을 할 때는 운동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오락을 할 때는 즐겁게 노는 일에 최대한 협조해야 한다. 놀러가서 집안일 걱정하는 사람은 바보다. 그 사람은 노는 일도 집안일도 성공적으로 할 수 없다.

훌륭한 선생님이 두 자매의 집에 오셨다. 언니는 무엇을 대접할까 음식을 만드는데 정신이 없다. 동생은 선생님 대접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선생님 앞에 앉아 그 말씀만 열심히 듣고 있다. 귀한 선생님을 모셨을 때는 그에게 배우는 일이 가장 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안타깝지만 썩은 살은 도려내자.**

법원처럼 징계가 미약한 조직은 없다. 간혹 언론에 오르내리는 비리사건이나 고위직에 대한 도전으로 보이는 사안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가혹한 처벌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업무를 태만히 하거나, 불친절하거나, 동료를 괴롭게 하는 일에 대하여는 과장들조차 훈계 한마디 하는 걸 보기 어렵다.

10여명이 근무하는 작은 사무실에 있을 때다. 그 중 한 사람은 업무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게다가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밖에 나가 동창이라도 만나는 날이면 뭐 그런 공무원이 있느냐고 침을 튀긴다. 그러다 보니 그는 늘 민원인을 거의 대하지 않는 자리나 일거리가 거의 없는 자리만 배정한다.

그런데 묵묵히 일 잘하고 친절한 직원이 있었다. 그는 늘 일 많고 탈 많은 자리만 배치된다. 결국 불친절하고 무능한 직원은 시간이 많아서 승진시험에 합격했다. 열심히 일하던 직원은 뒤쳐졌다.

외부로부터 약간의 금전을 받은 행위는 형사처벌이나 직장에서 배제하는 조치를 제외한 무거운 징계가 보통의 직원들의 정서로 합당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거칠고 튀는 언사를 조금 사용한 행위는 엄한 경고로 충분히 기강을 지킬 수 있다고 본다. 눈깔사탕을 훔친 어린 아이의 손목을 비틀어 못쓰게 한다면 사람들은 잔혹하다는 단어를 사용한다.

내가 말하는 썩은 살은 지나칠 정도로 무능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황당할 정도로 불친절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겉만 반짝거리고 보이지 않는 곳은 엉망으로 해놓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조서를 못 쳐서 등기소와 집행계만 들락거리던 사람도 있었다. 민원인에게는 말도 못하게 불친절하지만 윗사람에게는 고분고분한 사람이 잘도 버티고 있다. 윗사람에게 올리는 서류는 칼라문서로 작성하지만 일반 직원에게 회람시켜야 할 문서는 아무 곳에나 처박아두는 직원이 유능하다고 총무과에 장기 근무하는 예는 너무 흔하다. 정말 도려내야할 부분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벙어리가 능사는 아니다.**

집행관을 꿈꾸는 사람 중의 상당수는 벙어리가 된다. 결정권자에게 미움을 받거나 큰 사고가 터지지 않으면 발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의 위험이 있는 새로운 제안을 결코 받아들이거나 윗사람들에게 진달(進達)하지 않는다. 과에 문제가 있어도 일단 자체적으로 적당히 넘기고자 한다. 약간 무능하다는 말을 듣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사고가 나거나 실패해서 질책을 받는 것보다는 답답하다는 소리를 듣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결재계통을 따라 의견이 전달되고 검토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어떤 법원장께서는 직접 서기나 사무원과 만남을 추진하고 대화를 원한다. 바로 중간에서 의견전달이 가로막히기 때문이다. 건의사항에 대해 직장협의회나 노조에 더 기대를 거는 이유는 결재권자에게 의견이 직접 전달되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현행의 집행관제도가 빨리 없어지기를 바란다. 현직에서 이런 문제를 크게 말하지 못한 것은 대상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을까 걱정이 되어서이다. 자산공사나 의료보험, 국민연금 등에서 압류나 집행을 척척하는 것을 보면 민사집행공사를 만들어도 충분하다고 본다. 승진적체는 6, 7급이 집행공사로 이적하는 길을 열어놓으면 된다. 그래야 관리자들이 제대로 관리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일터 속의 정직을 위하여 **

간혹 공무원을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무원을 통제하기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영리하고 교묘하게 접근한다. 자신의 회사에 더 많은 물량을 배정해 주면 여행권이나 상품권을 준다고 제안한다. 거래처로부터 명절 때 선물을 받기도 한다. 그럴 때 그 여행권은 선물일까, 뇌물일까? 명절 때 받은 선물은 공무원 개인의 것인가, 국가의 것인가?

공무원 생활 속에서 적은 것이지만 늘 이런 고민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러한 문제가 지나쳐 형사처벌이나 징계가 시행되는 것을 간혹 보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어느 정도를 마음이 담긴 선물로 볼 것인가? 열심히 일해서 얻는 인센티브는 무엇인가? 이런 일들로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한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해결책은 명확한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다. 법원에서 하지 않고 있으니, 노조에서라도 나서서 노조원의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직원들의 우유부단한 행동이 점차 사라질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공평하고 정의롭게 살고 싶어 한다.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고 싶어 한다.

**적은 봉급으로 살아가기**

맞벌이를 하거나 부업을 하지 않으면 공무원 한사람 봉급으로 기본적인 생활조차 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적은 봉급 때문에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생활조차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정말 지혜가 필요한 대목이다. 노조가 적극 나서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노조란 결국 조합원의 생활향상이 제일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내 아내는 아이들의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품앗이 과외를 했다. 몇 사람의 학부모를 모아 영어와 수학, 논술, 음악을 각각 맡아서 아이들을 지도했다. 특별한 전공을 갖지 못한 학부모는 다른 부모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 그 집 어린 아이를 봐주는 일을 하기도 했다. 각자 가진 능력을 나누는 것이다. 직장에서는 외국어 교실을 열어 교사를 초청해 공부를 할 수도 있다. 악기나 댄스를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운동도 이런 방법으로 배운다면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나는 단소와 대금, 수영을 배워 교회에서 청년들과 어린이들을 가르친다. 직장에서도 얼마든지 이렇게 상부상조하고 품앗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글을 맺으면서 **

무던히도 다투고 때로는 힘들게 했던 아내, 그렇지만 슬기롭게 두 아이를 잘 키우고 지금까지 살아온 아내가 제일 고맙다. 보증사고로 수천만원의 빚을 떠안았을 때 얼굴 표정 하나 찡그리지 않고 도리어 나를 위로하던 아내가 지나온 공무원 생활을 돌이켜 볼 때 가장 고맙게 다가온다.

공무원 생활을 접으면서 무척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 이야기를 하려니 마음만 앞서 제대로 설명도 못하고 장황하게만 늘어 놓았다.

정직하고자 했으나 정직하지 못했고, 동료직원들을 위해 일하고자 했으나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었다. 업무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자 했으나 제대로 연구하나 해 본 것이 없고, 능률적인 업무관행을 만들어 보고자 했으나 아무 것 하나 편리하게 만들어 본 것이 없다. 신명나는 일터를 만들어 보고자 했으나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고,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들어 가고자 했으나 어린이집 하나 만들지 못했다. 늘 아쉬움과 후회 뿐이다.

오늘도 등기신청을 했다가 취하를 종용받았다. 참 마음이 묘하다. 얼마전 내가 법무사에게 취하를 종용하다가 이제 입장이 바뀌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교합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과 내가 등기관이면 수리했을까 하며 생각이 복잡해진다.

마지막으로, 계장승진하기 전에 한 두달 정도 법무사 사무실에서 근무해 보고 법원 공무원으로 일한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판사들도 그렇게 하고 있고, 상당수 행정부처도 그렇게 하고 있다.

늘 함께 근무했던 법원 직원들에게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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