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삼 넷 오 여섯 칠 팔 아홉 공

하늘소리
2009-07-08
조회수 6798
하나 둘 삼 넷 오 여섯 칠 팔 아홉 공




식전 댓바람에 아내 전화기가 요동을 친다. 진동으로 놓는다고 조용한 게 아니다. 펜 접시에 담아 놓은 전화기는 금방이라도 플라스틱 접시를 부술 듯이 광란이다. 하는 수 없이 대신 전화를 받았다. 인사도 한 마디 없이 “택밴데요, 청주시 덕대동이 어디에요?”하고 묻는다.




잠깐 머리가 띵했다. 곧바로 상황이 머리 속에서 정리를 끝냈다. 물건을 전화로 주문하면서 주소를 잘못 불러주었거나 잘못 적은 것이다. 덕대동이 아니고 복대동을 잘못 적은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직원을 채용하면 제일 먼저 가르치는 게 전화예절이다. 그중에서도 받아 적거나 내용을 불러주는 요령에 대해 설명을 자세히 한다. 그런데도 고집이 세고 생각을 열어놓지 않는 직원은 여지없이 문제를 일으킨다. 용담동을 용암동으로 적어 놓기도 하고 사천동을 사창동으로 적어놓기 일쑤다. 11일을 10일로 적어놓는가 하면 112번지를 122번지로 적어놓기도 한다. 숫자를 적는 게 서투른 사람도 있다. 1,100,000원을 110,000원으로 적는 사람도 많다. 결국 분쟁으로 비화되고 난처한 상황에 몰리기도 한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행정을 주도한 것은 처음 군대였다. 공무원사회의 행정도 군사행정에서 영향을 받은 바 크다. 그 다음은 아마 운동권 행정이었을 것이다. 시월유신 이후 혹독한 탄압 아래서 지하활동으로 적은 인력과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수많은 활동을 하려면 최고의 능률과 효율이 필요했으니 의사결정구조와 행정처리가 고도의 능률적인 형태로 발전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 다음으로 조직문화가 능률적으로 발전하고 선도했던 그룹은 대기업 행정(경영)이다. 비약적인 경제성장과 더불어 당연히 우수한 기업문화와 행정체계를 갖춘 기업이 부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군에 입대해서 통신부대에 배치를 받았다. 장비에 대해 교육을 받는 게 중요하지만 그중 눈길을 끄는 교육이 바로 의사전달 훈련이었다. 일단 정확하게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숫자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기수와 서수를 혼합해서 사용한다. “하나, 둘, 삼, 넷, 오, 여섯, 칠, 팔, 아홉, 공”으로 숫자를 부르니 혼동되는 숫자가 없다. 영문 알파벳도 별도로 외워서 사용한다. 가령 ‘R’을 ‘로미오’라고 읽는 것과 같다. 물론 보안을 위해 외부에서 알아듣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살아가면서 아주 작은 것 하나에도 세심하며 지혜롭게 대처하며 실천한다면 불편한 점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작고 세심하고, 생활 속에 밀착된 것들을 무시하며 사는 사람들, 굳이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자들에게 화 있을진저......




요즘 각종 서류나 서식, 제안서, 사후 정산보고 등을 바라보며 한심한 생각이 많이 든다. 그것을 만든 사람이나 그에게서 정보를 얻은 사람만이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니 말이다. 꼭 필요한 것들을 아주 간편한 방법으로 많은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내는 것, 아마 진정한 민주화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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