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달을 맞으며

하늘소리
2012-12-02
조회수 5169
매듭달을 맞으며

숲해설가 수첩엔 11월을 미틈달, 12월을 매듭달이라고 쓰고 있다. 미틈달은 들겨울달이라고도 한다. 11월은 가을에서 겨울로 치닫는 달이라 하여 미틈달이라고 하는데 순수한 우리말이다. 매듭은 끈을 잡아매어 마디를 이룬 것을 말하기도 하고 일의 순서에 따른 결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식물의 한 살이가 봄에 파종하고 여름에 무성하고 가을에 결실하고 겨울을 씨앗으로 나는 모양으로 이제 마무리하란 뜻인가 보다.

우리네 인생도 봄 여름 가을 겨울 나누면 스무살까지 인생의 씨앗을 뿌리고, 마흔까지 부지런히 승진하고 사업을 키우고, 회갑까지 내실을 키우고 탄탄하게 결실을 맺어 남은 생을 보내도록 하여야 한다. 수명이 늘어 어지간히 속살을 단단히 채우지 않으면 남은 인생을 고달프게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매듭달을 맞으며 문득 인생도 생각하고 부부 사이도 생각해봤다. 아이가 어렸을 때에는 아내와 아이와 함께 밤새워 기도하며 영성을 다지는 일도 많았다. 막상 쉰이 넘은 나이에는 기도는커녕 진지한 대화조차 없이 살고 있다. 여유를 가지고 주변도 돌아보고 자신의 속살을 다지는 일을 해야 하건만 쫓기듯 살고 있다. 책장에 눈길을 주고 무어라도 읽어보며 마음을 차분히 하자고 마음먹었다. ‘연인보다 아름다운 부부로 살아가기 위한 부부학교’라는 책이 있다. 신기한 듯 펼쳐보니 오래 전에 사다놓고 내 이름이 새겨진 고무도장을 반듯하게 찍어 놓았다. 중간 중간 여러 색으로 밑줄도 그어놓고 괄호도 쳐 놓았다. 책장도 중간 중간 접혀 있다.

책을 보는 내 습관이 아니다. 책을 사다 후루룩 라면먹기 대회에서 우승자가 면발 흡입하듯 읽어 놓고 아내에게 자랑했다. 그리고 방치했던 책을 아내가 몰래 가져다 밑줄 그어가며 읽은 모양이다. 내 말이라면 어떻게든 무시해 보려고 애쓰던 아내가 어느새 내가 하던 말을 따라 하는 걸 보고 이상하게 여겼는데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 아내의 독서습관은 내가 읽은 책 따라 읽기였다. 책 고르느라 신경 쓸 필요 없고, 책 사느라 경제적으로 지출할 필요 없고, 남편 머릿속까지 검열할 수 있으니 돌 하나 잘 던져 참새를 몇 마리나 잡은 셈이다. 내가 책을 읽고 뭘 좀 아는 척하면 오히려 훈수까지 둘 정도다.

결혼해서 집들이 선물로 받은 액자 중에 ‘이런 부부가 되게 하여 주소서’란 게 있었다. 생김이 촌스러워 잠시 걸었다 베란다로 보내버린 그 싯귀가 갑자기 생각난다. “사랑을 줄줄 알고/ 사랑을 받을 줄 아는 부부가 되게 하소서. 작은 것을 얻어도 소중하게 여기며/ 큰 것을 가지고도 아끼지 아니하고/ 좋은 것이 있을 때 서로가 양보하고/ 허물이 보일 때는 덮어주게 하소서. 어려울 때 곁에서 힘이 되게 하시고/ 벅찰 때는 서로가 나눠지게 하시며/ 용기를 잃었을 땐 두 손 잡게 하소서.” 이 촌스러운 시가 다시 마음에 닿는다. 한해를 또 매듭지으며 지금까지 함께 해주며 반려가 된 아내를 다시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마음을 추스르느라 바라보던 메모쪽지도 새삼스럽다. 부부십계명이다. “ 1. 바람처럼 2.여름 햇살처럼 3. 밤하늘의 별처럼 4. 아름드리나무처럼 5. 가뭄의 단비처럼 6. 꽃처럼 7. 바다처럼 8. 하늘처럼 9. 높은 산처럼 10. 강물처럼” 그렇게 서로를 시원하게 해주고 소망이 되고 그늘이 되고 적셔주고 이해하고 미소 짓고 안아주고 존중하고 믿고 함께 흘러가보자.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