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일기 그리고 진보정당, 분노
가끔 지나간 날을 돌이켜 보기도 합니다. 10여년 전 법원에 근무할 때 전국 법원의 직원 십여명이 카페를 만들어 각자의 일기를 한달씩 이어 썼던 일이 있습니다. 매달 일기의 이름도 붙였습니다. 퇴직 후에도 얼마간 썼는데 공무원노조 설립 단계에서 회원들의 의견이 달라 모두 흩어졌습니다. 일기를 나누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요즘 노조와 진보정당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내 젊음을 갈가리 찢어놓은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아래 일기를 보면 제가 얼마나 힘든 시절을 살아왔는지, 그래도 성실하고 열심히 살았는지, 40이 넘은 나이에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는지 보입니다. 공무원노동조합을 만들면 깨긋해지고, 당당해지고, 국민들로부터 사랑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힘든 가운데도 공무원노조를 만들기 위해 애썼고, 실망하고 절망하고 두려움에 떨던 후배들을 다독이고.....
그때도 분열을 획책하고 노조를 이용하고, 그러던 놈들이 있었습니다. 그놈들은 지금도 진보정당의 비례대표자리를 갖가지 꿍꿍이짓을 해서 꿰차고 노조와 민주진영의 사람들이 얼굴을 들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놈들을 쳐내지 않으면 늘 그모양입니다. 옛날 일기를 읽으며 눈물을 삼킵니다.
다로파 2004년 4월 일기모음 찔레꽃 필때까지
2004. 5. 9. 일. 어버이주일
교회에서는 5월 첫째주일을 꽃주일(어린이주일)로 지키고
둘째주일은 어버이주일로 지킨다.
우리 교회에서는 어버이주일에 야외로 나가
즐거운 놀이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나눈다.
오늘은 비가 많이 와서 교회에서 고기를 구워먹었다.
국악교실에서는 국악찬송가 두곡을 선곡해서 오랫동안 연습해왔다.
어버이주일에 부를 노래다.
대금 단소 해금 장구 밖에 없지만
열심히 연주하고 '어머니 내어머니' 국악찬송을 드렸다.
물론 나는 그 예배에 없었다.
그 시간에 빗속을 달려서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 병원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교회에 돌아오니 어른들이 다 내 걱정이다.
아버지 병간하다가 내가 먼저 병이 나겠다고 한걱정이시다.
내가 어른들을 모시는 어려움보다 어른들로부터 받는 사랑이 훨씬 크다.
우리 교회 어른들은 내가 40세가 훨씬 넘도록
아이처럼 이뻐해 주신다.
이렇게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시는 분들에게
나는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어버이주일에는 어르신들의 사랑에 내가 우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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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4. 28. 수. 선교회관마련
교회 뒤편에 낡은 건물을 세얻어
요즘 수리가 한창이다.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할까?
국악교실 연습실로 쓴다.
또 방과후교실을 한다.
공부방도 한다.
성경공부도 하고
민요교실도하고 서예교실도 계획 중이다.
좋은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2004. 4. 17. 토. 선거가 끝나고
자주 모임에서 뵙던 분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셨다.
정도 조금 느꼈던 터라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성원을 했다.
주위 사람들한테 그분을 찍어달라고 부탁할 필요는 없지만
투표를 하고 놀러가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내가 할 일 같았다.
물론 투표를 하면 그분에게 기표할테니까...
난 전에도 친구가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그리 달갑게 보지 않았다.
그 친구가 국회의원이 되고는 한번도 식사를 같이 하지 못했다.
몇번 만났지만 밤늦은 시간 동네 하이마트에 급한 물건 사러갔다가
마침 그집도 급한 물건 사러와서 마주쳤다.
그리고 공식행사장에서 만나 의례적인 악수와 안부 몇마디...
언제한번 목욕탕에서 물에 몸을 담그고 깊은 이야기 나눌 기회를 잃었다.
국회의원은 바쁘니까...
난 나와 친한 사람이 너무 바쁜 자리에 가는 것을 원치않는다.
지금 국회의원에 당선되신 분은 자주 만나 그분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그러니 그리 아쉬울 것도 없다.
존경하는 사람은 높은 자리에 가도 좋고
사랑하는 사람은 너무 높은 자리에 가지않도록 하는게 현명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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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4. 16. 금. 컴퓨터바이러스
컴퓨터 속도가 느려졌다.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형편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데이터를 힘들게 보전하고 포맷햇다.
그런데 다시 사용하고 몇시간도 안되어
바이러스에 재감염되었다.
며칠 끙끙대다가 결심했다.
데이터를 무시하고 포맷해 버렸다.
앞으로 중요한 데이터는 별도로 보관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무조건 포맷하기로 했다.
그것이 컴퓨터를 가장 편리하게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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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4. 13. 화. 00:30
아버지 입원기간이 벌써 3주가 지나고 있다.
처음 병원에 다니기 시작하고 한달이 되었다.
벌써 생활이 흐트러지고, 정신도 오락가락 한다.
신경이 날카로워 주위 사람과 싫은 소리를 자주하고
부부싸움도 잦다.
수술이 잘되어 쉽게 퇴원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바지에 접합부분이 터져서 재수술을 했다.
아버지의 고통은 말로 할 수 없다.
아버지를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프다.
부활절 국악찬양예배를 아버지 퇴원선물로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재수술 때문에 나는 연주도 하지 못했다.
앞으로 얼마를 더 입원해야할지...
경제적 부담도 이제는 서서히 생활을 죄어오고 있다.
가끔 지갑을 보면 천원짜리 몇장만 달랑거린다.
이럴 때 더욱 기도하고, 경건하고, 절제된 생활을 해야한다.
나를 늘 지키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인하여 나는 다시 힘을 내서 살아간다.
가끔 지나간 날을 돌이켜 보기도 합니다. 10여년 전 법원에 근무할 때 전국 법원의 직원 십여명이 카페를 만들어 각자의 일기를 한달씩 이어 썼던 일이 있습니다. 매달 일기의 이름도 붙였습니다. 퇴직 후에도 얼마간 썼는데 공무원노조 설립 단계에서 회원들의 의견이 달라 모두 흩어졌습니다. 일기를 나누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요즘 노조와 진보정당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내 젊음을 갈가리 찢어놓은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아래 일기를 보면 제가 얼마나 힘든 시절을 살아왔는지, 그래도 성실하고 열심히 살았는지, 40이 넘은 나이에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는지 보입니다. 공무원노동조합을 만들면 깨긋해지고, 당당해지고, 국민들로부터 사랑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힘든 가운데도 공무원노조를 만들기 위해 애썼고, 실망하고 절망하고 두려움에 떨던 후배들을 다독이고.....
그때도 분열을 획책하고 노조를 이용하고, 그러던 놈들이 있었습니다. 그놈들은 지금도 진보정당의 비례대표자리를 갖가지 꿍꿍이짓을 해서 꿰차고 노조와 민주진영의 사람들이 얼굴을 들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놈들을 쳐내지 않으면 늘 그모양입니다. 옛날 일기를 읽으며 눈물을 삼킵니다.
다로파 2004년 4월 일기모음 찔레꽃 필때까지
2004. 5. 9. 일. 어버이주일
교회에서는 5월 첫째주일을 꽃주일(어린이주일)로 지키고
둘째주일은 어버이주일로 지킨다.
우리 교회에서는 어버이주일에 야외로 나가
즐거운 놀이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나눈다.
오늘은 비가 많이 와서 교회에서 고기를 구워먹었다.
국악교실에서는 국악찬송가 두곡을 선곡해서 오랫동안 연습해왔다.
어버이주일에 부를 노래다.
대금 단소 해금 장구 밖에 없지만
열심히 연주하고 '어머니 내어머니' 국악찬송을 드렸다.
물론 나는 그 예배에 없었다.
그 시간에 빗속을 달려서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 병원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교회에 돌아오니 어른들이 다 내 걱정이다.
아버지 병간하다가 내가 먼저 병이 나겠다고 한걱정이시다.
내가 어른들을 모시는 어려움보다 어른들로부터 받는 사랑이 훨씬 크다.
우리 교회 어른들은 내가 40세가 훨씬 넘도록
아이처럼 이뻐해 주신다.
이렇게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시는 분들에게
나는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어버이주일에는 어르신들의 사랑에 내가 우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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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4. 28. 수. 선교회관마련
교회 뒤편에 낡은 건물을 세얻어
요즘 수리가 한창이다.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할까?
국악교실 연습실로 쓴다.
또 방과후교실을 한다.
공부방도 한다.
성경공부도 하고
민요교실도하고 서예교실도 계획 중이다.
좋은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2004. 4. 17. 토. 선거가 끝나고
자주 모임에서 뵙던 분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셨다.
정도 조금 느꼈던 터라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성원을 했다.
주위 사람들한테 그분을 찍어달라고 부탁할 필요는 없지만
투표를 하고 놀러가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내가 할 일 같았다.
물론 투표를 하면 그분에게 기표할테니까...
난 전에도 친구가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그리 달갑게 보지 않았다.
그 친구가 국회의원이 되고는 한번도 식사를 같이 하지 못했다.
몇번 만났지만 밤늦은 시간 동네 하이마트에 급한 물건 사러갔다가
마침 그집도 급한 물건 사러와서 마주쳤다.
그리고 공식행사장에서 만나 의례적인 악수와 안부 몇마디...
언제한번 목욕탕에서 물에 몸을 담그고 깊은 이야기 나눌 기회를 잃었다.
국회의원은 바쁘니까...
난 나와 친한 사람이 너무 바쁜 자리에 가는 것을 원치않는다.
지금 국회의원에 당선되신 분은 자주 만나 그분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그러니 그리 아쉬울 것도 없다.
존경하는 사람은 높은 자리에 가도 좋고
사랑하는 사람은 너무 높은 자리에 가지않도록 하는게 현명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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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4. 16. 금. 컴퓨터바이러스
컴퓨터 속도가 느려졌다.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형편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데이터를 힘들게 보전하고 포맷햇다.
그런데 다시 사용하고 몇시간도 안되어
바이러스에 재감염되었다.
며칠 끙끙대다가 결심했다.
데이터를 무시하고 포맷해 버렸다.
앞으로 중요한 데이터는 별도로 보관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무조건 포맷하기로 했다.
그것이 컴퓨터를 가장 편리하게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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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4. 13. 화. 00:30
아버지 입원기간이 벌써 3주가 지나고 있다.
처음 병원에 다니기 시작하고 한달이 되었다.
벌써 생활이 흐트러지고, 정신도 오락가락 한다.
신경이 날카로워 주위 사람과 싫은 소리를 자주하고
부부싸움도 잦다.
수술이 잘되어 쉽게 퇴원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바지에 접합부분이 터져서 재수술을 했다.
아버지의 고통은 말로 할 수 없다.
아버지를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프다.
부활절 국악찬양예배를 아버지 퇴원선물로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재수술 때문에 나는 연주도 하지 못했다.
앞으로 얼마를 더 입원해야할지...
경제적 부담도 이제는 서서히 생활을 죄어오고 있다.
가끔 지갑을 보면 천원짜리 몇장만 달랑거린다.
이럴 때 더욱 기도하고, 경건하고, 절제된 생활을 해야한다.
나를 늘 지키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인하여 나는 다시 힘을 내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