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품검사

하늘소리 시민기자
2012-01-26
조회수 5733
삼품검사

군에서 전역한지 1년도 안돼서 다시 제복을 입었다. 학교에 복학을 하려니 재학 중 B학점 이상을 유지해야 하는 장학생의 조건을 채우지 못해서 장학금이 잘렸다. 잘 됐다. 새벽에 전단을 돌리고 도망다니기에도 좋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교인들에게 강연회 전단을 돌렸다. KBS 시청료거부운동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도 잠시 친척 집에 가서 아이들 공부를 가르쳤다. 농사 일을 배운다고 했으나 아이들 개학하니 학교로 돌아가란다. 돌아갈 학교도 없는데....

청주로 나와 다시 재야 운동을 하던 선배들 틈에 잠시 일을 거들다 세상을 등지기로 결심을 했다. 요즘 젊은이들처럼 자살을 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에서 죄를 짓고 교도소 생활을 하는 이들, 요즘 말로 하면 민주화운동을 하다 옥에 갇힌 이들 곁에서 그들과 아픔과 어려움을 함께 겪으며 빛도 없이 이름없이 그렇게 살자고 결심했다. 교도관 시험을 봤다.

요즘 정봉주 때문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홍성교도소 교도관이 되었다. 발령을 받기 전에 교육도 받았고, 막노동으로 생계도 꾸리고 있었다. 주로 하던 일은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싱크대 다는 일을 했다. 찬물조가~ 찬물조가를 외치며 무거운 싱크대를 계단으로 져 날랐다. 지금이야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그때는 5층 아파트가 최고였다. 찬물조가는 찬장 물통 조리대 가스대 머리글자다.

싱크대를 달다 사장님께 연락을 받았다. 내일부터 근무하러 오라고 해서 일을 그만두고 홍성으로 갔다. 갑자기 일을 그만두는 바람에 보름치 이상 품삯을 못받았다. 10월달인데 당장 야간근무를 하라면서 1호 군복을 지급했다. 몸베 같이 헐렁한 군복을 입고 교도관 근무를 시작했다. 그때의 그 두려움은 지금도 잠을 깰 정도로 컸다. 뒤에서 누가 나를 찌를 것만 같다. 식당을 가다 갑자기 나타난 재소자(죄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밤이 되자 공포와 더불어 추위가 엄습했다. 홑겹 군복 속으로 찬 바람이 파고드는데 계속 제자리 뛰기를 해야만 했다. 따뜻한 담요를 덮고 방안에서 잠을 자는 재소자를 바라보며 복도에서 그들이 안전하게 자도록 추위에 떨며 지키고 있는 자신이 불쌍해졌다. 누가 죄를 짓고 교도소에서 고생을 하는지 참 기가 막혔다. 죄를 짓고 온 저들은 따뜻한 방안에서 담요를 덮고 잠을 자는데 죄없이 교도관이 되어 교도소에 온 나는 잠도 못자고 추위에 떨며 저들을 지켜주고 있다.

악몽같은 밤이 지나고 오전 10시 쯤 퇴근을 하게 되었다. 선배교도관이 하숙집을 소개해 주었다. 당장 내복부터 사 입었다. 군생활 때도 안 입고 버텼던 내복인데 사회생활에서 내복이라니... 몸베같은 군복도 수선집에 가서 몸에 맞게 줄였다. 오후와 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비몽사몽이다. 군생활 동안 야간적응훈련을 그리했건만 하루 야근이 몸을 이리 망가뜨릴 수 있나 모르겠다. 아침이 되어 출근하니 운동장에 모여 조회를 한다.

군대로 말하면 점호다. 삼품검사부터 시작한다. 삼품은 교도관이 휴대하는 세가지 품목인데 포승, 호루라기(호각), 수첩을 말한다. 죄수를 잡아 묶으려면 당연히 포승줄이 있어야 하고, 도망가는 죄수를 추격하며 동료들에게 알리려면 호각도 필요하다. 수첩은 대통령 어록이나 업무 지시사항을 적어야 하고 가장 중요한 비상금을 넣어가지고 다녀야 한다. 지휘자가 '수첩' 하고 외치면 일제히 같은 동작으로 비상금 오천원이 보이도록 수첩을 꺼내서 오른 손에 들어 보이는 것이다. '포승' 하고 외치면 주머니에서 포승을 꺼내 한쪽 끝을 잡고 던져서 줄이 엉키지 않고 쫙 펴져야 한다. 이어서 '호각' 하고 외치면 순차로 길게 불어 끊김이 없어야 한다. 간혹 너무 세게 불어 호각 안의 동그란 구슬이 울림구멍에 박혀 소리가 멈추면 전체가 다시 하거나 기합을 받아야 한다. 비상금 오천원은 당시 자가용 승용차가 없으므로 재소자가 탈출하는 사고가 나면 택시를 타고 추격해야 하므로 교통비로 반드시 지참하고 있어야 할 금액을 작은 봉투에 접어 수첩에 넣어 휴대해야 한다.

왜 갑자기 30년이 다 되어가는 묵은 이야기를 꺼내나 모르겠다. 정봉주가 홍성교도소에 수감되었다고 해서 그런가 아니면 아내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나 모르겠다. 아침에 출근하며 아내가 휴대전화를 방에 놓고 나가는 일이 잦다. 그래서 교도소 삼품검사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현관문을 나서면서 '삼품'하고 크게 외치라고 웃으면서 말했더니 정말 소리치며 외쳤다. 차열쇠, 휴대전화, 지갑.... 아니나 다를까? 차열쇠를 책상 위에 두고 그냥 나간다. 지하주차장에서 전화해서 열쇠 갖다 달랠 뻔 했다.

힘겨운 시절 아픈 이야기이지만 이제는 웃으면서 한다. 나이가 들면서 자꾸 깜빡하는 일이 잦아진다. 이럴 때 삼품검사를 자주 떠올린다. 출근할 때도 현관에서 외치고, 출근해서도 일정확인, 청소, 메일검사을 외친다. 그나저나 요즘 교도소는 좀 덜 추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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