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처우와 적정처우

하늘소리
201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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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처우의 원칙과 적정처우

봉건제도에서 자본주의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농토를 떠나는 인구가 증가하였다. 빈궁한 사람들과 부랑자가 많이 생겼다. 그리하여 1601년 엘리자베스 구빈법(救貧法)에 따라 빈궁한 사람에 대한 부조 외에 빈민·부랑자 및 자녀에게 기술교육을 실시할 목적으로 강제노역소를 전국에 설치하였다. 이것이 바로 17세기 이후 설립된 영국의 강제노역소(强制勞役所) 워크하우스(work house)이다.

그러나 강제노역소 규칙이 징벌위주로 되어 있고, 운영도 퇴폐적이고 난맥적인 상황을 보여 불평이 많았다. 산업혁명기에 부조를 받아야 하는(被扶助) 인구가 급증하자 1834년 신구빈법(新救貧法)을 제정하였다. 강제노역소를 개선하여 노역소 외의 구제활동을 폐지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노역소 외에서 임금과 구빈수당을 받는 길을 봉쇄하였으나 현실적이지 못하여 점차 완화되었다.

노역소는 갖가지 비판에도 불구하고 존속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뒤 사회보장제도의 발달로 소멸하였다. (네이버 백과사전, 사회복지학사전)

사회복지학에서 사용하는 용어 중에 열등처우의 원칙(the principle the less eligibility)이란 것이 있다. 본래는 1834년 영국의 구빈법 조사위원회보고서에 수록된 신구빈법의 운영원칙 중 하나이며 구제를 받는 빈민의 처우는 최하급의 독립노동자의 수준보다 낮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인간적인 워크하우스에 의한 구제 이외에는 어떠한 구제도 인정하지 않는, 소위 워크하우스 테스트 원칙과 함께 실질적으로는 구제의 부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처우제한의 원칙(principle of less eligibility)이란 표현도 열등처우의 원칙과 같다. 원래는 영국 구빈법이 개정된 1834년에 확인된 원칙의 하나로 구민법에 의해 구제받는 빈민의 생활수준을 임금노동자의 층보다 낮게 책정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론이다. 이에 기인하여 복지서비스의 이용자에 대한 처우는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이 당연하며 그렇지 않을 때 그들의 의존심을 조장시킨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로 오늘날에도 쓰고 있다.

우리 사회는 복지논쟁이 선거에서 최고의 쟁점이 될 정도로 주요한 의제가 되었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잔여적) 복지는 이제 전국민이 다 아는 용어가 되었다. 복지논쟁은 누구에게 어떤 부분을 복지사업의 대상으로 할 것인가 하는 점이 지난 선거의 쟁점이었다면 이제 다가오는 선거에서는 어느 수준으로 할 것인가도 쟁점이 될 수 있다. 보편적 복지는 당연히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그러나 열등처우나 적정처우의 문제는 많은 철학적, 문화적 논란을 안고 있다.

다문화정책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다보니 내국인 중에서 미숙련노동자나 일용노동자의 처우가 악화되었다. 외국인노동자가 건설현장에서 목수, 미장, 조적, 철근 등의 일을 독점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높은 내국인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이런 분야에서 외국인노동자가 철수하면 국내기반이 무너진다는 이야기도 한다. 노동시장은 국내 산업자본가의 입장과 복잡하게 얽혀 그 향방을 가늠하기 어렵게 되었다.

영국과 미국에서 워크하우스나 열등처우의 원칙이 아직도 살아 잇는 것은 개인주의적인 그들의 문화에서 기인하다는 논문도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저소득층 상당수는 이렇게 사회정책의 그늘진 곳에 위치한 노동자들이 많다. 우리 사회의 문화는 영국이나 미국과 사뭇 다르다. 쉽게 열등처우란 표현을 쓰지 못한다. 강제노역소는 물론 삼청교육대 조차도 입에 거론하기 쉽지 않다. FTA 협정과 관련해서 산업재편도 예견된다. 정책의 반수혜자(오히려 피해를 보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사회복지 수급대상자의 처우는 적정처우, 즉 평균인( 통계적으로 말할 때 중앙값 median)의 수준으로 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표를 조금이라도 더 얻을 가능성이 있다. (주)

(주)평균이라고 말하지 않고 중앙값이라고 말한 것은 대체적으로 사람들의 수입이 고르게 분포할 경우에도 몇 명의 큰 부자가 있어 평균이 중앙에 위치한 보통사람들보다 훨씬 높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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