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전에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국어과목을 가르친다. 중3수업에 들어 갔을 때였다. 종근이라는 아이가 눈에 다래끼가 나 뻘겋게 부어 오른것을 보고 장난삼아 ‘종근아 어제 너 야동 많이 봐서 눈 부었구나?’ 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웃겨 죽는다. 오늘 수업시간에 배울 내용은 2학기 2단원에 나오는 <신문과 진실>이라는 글이다. 첫 장에는 송건호라는 이름이 씌여져있어 아이들에게 이분이 ‘언론비판도 많이 하시고 운동도 많이 하신분이다. 한겨레 신문을 만드는데 큰 힘을 실었던 분이다’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혹시나 해서 화려한 휴가를 본 사람 있냐고 물어보니 생각보다 없다. 나는 대강의 줄거리를 말해준 다음, 머리까진 그 아저씨도 나쁘지만 언론이 더 나쁜 짓을 그때 많이 했다고 했다. 아참, 조선일보 이야기도 곁들어서. 맨 앞에 앉아있던 소라가 눈이 동그래지며 물어 본다. ‘조선일보가 왜 나쁜거에요?’ 뭐라고 해야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일단 책을 읽어보라고 말을 했다. 혹여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 중3의 자녀가 있거들랑 교과서를 집어드시라.
이 글은 진실보도의 어려움과 준칙, 언론인의 자세에 대한 간략한 논설문이다. 서론에서 서로 싸우는 택시기사의 모습을 보며 누가 옳은지 시시비비를 가리는것 조차 매우 힘든 것처럼 진실보도 역시 매우 어려운 작업이라고 나와 있다. 본론에서는 진실보도의 준칙이 3가지가 제시 되어있다.
첫째, 사물의 전체를 보아야 한다. 어떠한 사실이라는 것은 다원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택시기사의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서는 각각의 이야기와 목격자, 당시의 상황, 현장등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기사 혹은 논평은 곡필된다.
둘째, 사물을 역사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사물의 가치는 역사의 발전에 따라 달라진다. 다수의 이익에 더불어 발전하는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여기서 발전하는 가치라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 기자는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꿰뚫어 볼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지식과 세계관이 필요하다. 가령 조선시대에는 여성의 정치가 불가능했다. 시대가 바뀌어 지금은 가능해져 버렸는데 아직도 그러한 역사의 발전과 발전하는 가치를 무시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직도 후진적 경제발전론을 주장하고, 통일시대라는 역사적 흐름에 역행하는 해묵은 색깔론. 아직도 황우석의 신화를 믿고, 인질도 못 구해오는 아주 끈끈한 한미동맹을 신봉하는 신문이 있다면? 그것도 전혀 반성이나 거리낌없이 배째라식으로 다른 신문 및 정권을 싸잡아 욕하고 뒤로는 새로운 정권을 사주하려 밀실협상해서 사장이 감옥도 가는, 그런 신문사들이 있다면 어떨까? 앞서 조선일보에대해 물어보았던 소라의 고개가 이제야 끄덕거린다.
셋째, ‘근거’와 ‘조건’을 식별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근거’는 쉽게 말해 사건의 중요한 면이고 ‘조건’은 덜 중요한 면이다. 교통사고가 났다면 사건의 가장 핵심적인 ‘근거’는 사람이 얼마나 죽고 차가 얼마나 부숴졌는지가 아니라 ‘왜 사고가 일어났는가?’이다. 음주운전인지, 졸음운전인지, 아니면 기타의 과실이 있었는지. 그 뒤에 ‘조건’은, 사람이 얼마나 죽었는지 차가 얼마나 부숴졌는지, 이로 인해 교통체증이 얼마나 유발되었는지.
불현듯 충북일보의 어떤 기자가 생각난다. 월터리프만의 ‘의제설정기능’을 말하던 그 분은 그 당시 취재기자가 과연 명계남 선생님의 강연의 주제, 말 그대로의 ‘의제설정’이 필요한 내용을 파악하고 보도한 것인지 아니면 사건의 있어서의 부가적인 기능인 ‘조건’을 제대로 식별하지 못한건 아닌지 알고 있는걸까?. 예를들어 교통사고가 나서 일가족이 죽었는데, 정작 ‘조건’에 해당하는 ‘고속도로 3시간이상 교통체증’에 초점을 맞추는 법이 어디 있느냔 말이다. 이런 문제는 ‘의제설정기능’을 넘어서 사건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교과서에서는 이 세 번째 기능에 덧붙여 ‘리드(lead)’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 보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리드인데 이것이 바로 ‘근거’에 해당하는 것이다. 교과서에서는 베트남전쟁을 바라보는 신문들이 반공진영의 나라와 공산진영의 나라가 서로 달다는 점을 예시로 부연하면서 기사의 어느 부분을 리드로 잡느냐에 따라 기사가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달라진다고 한다. 따라서 리드는 이해관계의 산물이다. 그 이해관계라는 것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므로 사람마다의 주장의 차이가 있고 관점의 차이가 있다. 어쩔수없다.
허나 앞서 나왔던 사건의 전체를 보아야 한다는 다원성에 입각한 첫째 준칙에 의하면 명계남 선생님의 1시간이 넘는 강연을 ‘폭탄테러영화’로 리드를 뽑은 것은 편협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그 어렵다는 진실보도를 하기위해 적어도 언론학교의 취지나 목적, 민언련의 활동, 명계남 선생님의 강연 자료 및 다른 참석자들의 의견을 과연 꼼꼼히 검토했는가.
아이들은 명계남을 몰랐다. 결국 민언련과 충북일보사이의 논쟁은 소개하지 못했지만 수업을 마칠때까지 눈이 빨갛게 부어오른 종근이를 가리키며 한마디 했다. “얘들아, 이 자리에 기자가 있었어. 오늘 내 수업을 보도한대. 그래서 내일 아침 신문을 손꼽아 기다려 보았는데, ‘학원강사가 학생에게 야동 망언’이라고 사진까지 함께 떴어. 너희들이 보기에 오늘 함께 공부한 내 수업의 가장 중요한 ‘근거’가 겨우 ‘종근아 어제 너 야동 많이 봐서 눈 부었구나?’ 였니?”
나는 오전에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국어과목을 가르친다. 중3수업에 들어 갔을 때였다. 종근이라는 아이가 눈에 다래끼가 나 뻘겋게 부어 오른것을 보고 장난삼아 ‘종근아 어제 너 야동 많이 봐서 눈 부었구나?’ 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웃겨 죽는다. 오늘 수업시간에 배울 내용은 2학기 2단원에 나오는 <신문과 진실>이라는 글이다. 첫 장에는 송건호라는 이름이 씌여져있어 아이들에게 이분이 ‘언론비판도 많이 하시고 운동도 많이 하신분이다. 한겨레 신문을 만드는데 큰 힘을 실었던 분이다’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혹시나 해서 화려한 휴가를 본 사람 있냐고 물어보니 생각보다 없다. 나는 대강의 줄거리를 말해준 다음, 머리까진 그 아저씨도 나쁘지만 언론이 더 나쁜 짓을 그때 많이 했다고 했다. 아참, 조선일보 이야기도 곁들어서. 맨 앞에 앉아있던 소라가 눈이 동그래지며 물어 본다. ‘조선일보가 왜 나쁜거에요?’ 뭐라고 해야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일단 책을 읽어보라고 말을 했다. 혹여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 중3의 자녀가 있거들랑 교과서를 집어드시라.
이 글은 진실보도의 어려움과 준칙, 언론인의 자세에 대한 간략한 논설문이다. 서론에서 서로 싸우는 택시기사의 모습을 보며 누가 옳은지 시시비비를 가리는것 조차 매우 힘든 것처럼 진실보도 역시 매우 어려운 작업이라고 나와 있다. 본론에서는 진실보도의 준칙이 3가지가 제시 되어있다.
첫째, 사물의 전체를 보아야 한다. 어떠한 사실이라는 것은 다원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택시기사의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서는 각각의 이야기와 목격자, 당시의 상황, 현장등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기사 혹은 논평은 곡필된다.
둘째, 사물을 역사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사물의 가치는 역사의 발전에 따라 달라진다. 다수의 이익에 더불어 발전하는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여기서 발전하는 가치라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 기자는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꿰뚫어 볼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지식과 세계관이 필요하다. 가령 조선시대에는 여성의 정치가 불가능했다. 시대가 바뀌어 지금은 가능해져 버렸는데 아직도 그러한 역사의 발전과 발전하는 가치를 무시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직도 후진적 경제발전론을 주장하고, 통일시대라는 역사적 흐름에 역행하는 해묵은 색깔론. 아직도 황우석의 신화를 믿고, 인질도 못 구해오는 아주 끈끈한 한미동맹을 신봉하는 신문이 있다면? 그것도 전혀 반성이나 거리낌없이 배째라식으로 다른 신문 및 정권을 싸잡아 욕하고 뒤로는 새로운 정권을 사주하려 밀실협상해서 사장이 감옥도 가는, 그런 신문사들이 있다면 어떨까? 앞서 조선일보에대해 물어보았던 소라의 고개가 이제야 끄덕거린다.
셋째, ‘근거’와 ‘조건’을 식별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근거’는 쉽게 말해 사건의 중요한 면이고 ‘조건’은 덜 중요한 면이다. 교통사고가 났다면 사건의 가장 핵심적인 ‘근거’는 사람이 얼마나 죽고 차가 얼마나 부숴졌는지가 아니라 ‘왜 사고가 일어났는가?’이다. 음주운전인지, 졸음운전인지, 아니면 기타의 과실이 있었는지. 그 뒤에 ‘조건’은, 사람이 얼마나 죽었는지 차가 얼마나 부숴졌는지, 이로 인해 교통체증이 얼마나 유발되었는지.
불현듯 충북일보의 어떤 기자가 생각난다. 월터리프만의 ‘의제설정기능’을 말하던 그 분은 그 당시 취재기자가 과연 명계남 선생님의 강연의 주제, 말 그대로의 ‘의제설정’이 필요한 내용을 파악하고 보도한 것인지 아니면 사건의 있어서의 부가적인 기능인 ‘조건’을 제대로 식별하지 못한건 아닌지 알고 있는걸까?. 예를들어 교통사고가 나서 일가족이 죽었는데, 정작 ‘조건’에 해당하는 ‘고속도로 3시간이상 교통체증’에 초점을 맞추는 법이 어디 있느냔 말이다. 이런 문제는 ‘의제설정기능’을 넘어서 사건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교과서에서는 이 세 번째 기능에 덧붙여 ‘리드(lead)’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 보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리드인데 이것이 바로 ‘근거’에 해당하는 것이다. 교과서에서는 베트남전쟁을 바라보는 신문들이 반공진영의 나라와 공산진영의 나라가 서로 달다는 점을 예시로 부연하면서 기사의 어느 부분을 리드로 잡느냐에 따라 기사가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달라진다고 한다. 따라서 리드는 이해관계의 산물이다. 그 이해관계라는 것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므로 사람마다의 주장의 차이가 있고 관점의 차이가 있다. 어쩔수없다.
허나 앞서 나왔던 사건의 전체를 보아야 한다는 다원성에 입각한 첫째 준칙에 의하면 명계남 선생님의 1시간이 넘는 강연을 ‘폭탄테러영화’로 리드를 뽑은 것은 편협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그 어렵다는 진실보도를 하기위해 적어도 언론학교의 취지나 목적, 민언련의 활동, 명계남 선생님의 강연 자료 및 다른 참석자들의 의견을 과연 꼼꼼히 검토했는가.
아이들은 명계남을 몰랐다. 결국 민언련과 충북일보사이의 논쟁은 소개하지 못했지만 수업을 마칠때까지 눈이 빨갛게 부어오른 종근이를 가리키며 한마디 했다. “얘들아, 이 자리에 기자가 있었어. 오늘 내 수업을 보도한대. 그래서 내일 아침 신문을 손꼽아 기다려 보았는데, ‘학원강사가 학생에게 야동 망언’이라고 사진까지 함께 떴어. 너희들이 보기에 오늘 함께 공부한 내 수업의 가장 중요한 ‘근거’가 겨우 ‘종근아 어제 너 야동 많이 봐서 눈 부었구나?’ 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