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끈질긴 지구력을 찬양하며
대학을 졸업하고 2001년 충청리뷰에 입사했다. 그리고 나는 충청리뷰를 22년 째 다니고 있다. 그 사이 두 아이를 낳았고, 첫째 아이를 낳고 100일 쉬고 나왔고 둘째 아이는 세상 분위기가 바뀌어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기자 일은 늘 반복된 일 같으면서도 매일 다른 일들이 펼쳐졌다. 호기심이 많고 반복되는 일을 심심하게 여기는 나 같은 사람은 기자라는 직업이 지루할 틈이 없어 좋았다. 그렇게 1년만 다니고 그만두자는 생각은 바뀌어 22년을 채웠다. 주간지 기자인 나는 매주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에 숙제하듯 살았던 것 같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어도 어김없이 책상에 앉아 마감 시간이 다가오면 한 글자 한 글자 입력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단련됐으며 성장했다. 수행이기도 했다. 내 눈앞에 폭탄이 떨어져도 기사를 써야 한다는 걸 배웠으니까. 독자와의 약속의 무게가 그만큼 무거웠다.
기자 일의 좋은 점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생각을 읽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한 개인일지라도 확장되면 지역이었고 세상이고 우주였다.
충북민언련을 처음 만난 것도 기자를 시작하고 몇 해 지나지 않아서였다. 지나고 나면 긴 세월인데 돌아보면 참 짧다. 충청리뷰 기자로 살면서 수많은 일들을 겪었던 것처럼 충북민언련도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많았을 것이다. 때로는 가까이서 지켜보았지만 사실 멀리서 볼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부채의식이 있다.
지역신문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데, 이를 다루는 충북민언련 조직은 얼마나 더 힘들겠는가. 기자 일이 좋으면서 이 일이 계속 생존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지금처럼 지역의 ‘관계’와 ‘권력’에 의해 유지되는 신문이 무슨 경쟁력이 있을까 싶고, 구매자들이 원하는 건 과연 무엇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종이신문이 유튜브에 쇼츠에 또 다른 새로운 플랫폼에 압도당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것 같다.
내 인생의 팔 할을 기자로 살았고,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살지는 잘 모르겠다. 긴 세월 동안 남들의 즐겁고 슬프고 아프고 속상하고 억울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때로는 공감하고 의심하며 확인하는 수많은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며 살았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설레지 않는 순간이 올 것이고, 더 이상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다고 느낄 때가 오면 나는 펜을 놓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나 자신에게 천착하고 싶다. 어쨌든 조직보다는 개인이 삶이 더 행복하면 좋겠다. 그러려면 역설적으로 조직이 튼튼해야 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 보람을 찾고 지지를 받아야 한다. 가끔씩 내가 싸워야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다. 거대 담론부터 미시 담론까지. 매일 끊임없이 토론하고 고민하는 데 답이 안 보인다. 나는 오늘 무엇에 저항하고 있으며,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충북민언련은 지역 언론사들을 모니터링하고 발표해왔다. 애정과 애증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난파선과 같은 지역언론과 시민사회가 전진하기 위해서는 지금 노를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순간도 지나갈 것이고, 우리가 노를 놓지 않는다면 어딘가에 도달해있을 것이다.
우리의 끈질긴 지구력을 찬양하며
대학을 졸업하고 2001년 충청리뷰에 입사했다. 그리고 나는 충청리뷰를 22년 째 다니고 있다. 그 사이 두 아이를 낳았고, 첫째 아이를 낳고 100일 쉬고 나왔고 둘째 아이는 세상 분위기가 바뀌어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기자 일은 늘 반복된 일 같으면서도 매일 다른 일들이 펼쳐졌다. 호기심이 많고 반복되는 일을 심심하게 여기는 나 같은 사람은 기자라는 직업이 지루할 틈이 없어 좋았다. 그렇게 1년만 다니고 그만두자는 생각은 바뀌어 22년을 채웠다. 주간지 기자인 나는 매주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에 숙제하듯 살았던 것 같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어도 어김없이 책상에 앉아 마감 시간이 다가오면 한 글자 한 글자 입력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단련됐으며 성장했다. 수행이기도 했다. 내 눈앞에 폭탄이 떨어져도 기사를 써야 한다는 걸 배웠으니까. 독자와의 약속의 무게가 그만큼 무거웠다.
기자 일의 좋은 점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생각을 읽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한 개인일지라도 확장되면 지역이었고 세상이고 우주였다.
충북민언련을 처음 만난 것도 기자를 시작하고 몇 해 지나지 않아서였다. 지나고 나면 긴 세월인데 돌아보면 참 짧다. 충청리뷰 기자로 살면서 수많은 일들을 겪었던 것처럼 충북민언련도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많았을 것이다. 때로는 가까이서 지켜보았지만 사실 멀리서 볼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부채의식이 있다.
지역신문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데, 이를 다루는 충북민언련 조직은 얼마나 더 힘들겠는가. 기자 일이 좋으면서 이 일이 계속 생존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지금처럼 지역의 ‘관계’와 ‘권력’에 의해 유지되는 신문이 무슨 경쟁력이 있을까 싶고, 구매자들이 원하는 건 과연 무엇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종이신문이 유튜브에 쇼츠에 또 다른 새로운 플랫폼에 압도당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것 같다.
내 인생의 팔 할을 기자로 살았고,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살지는 잘 모르겠다. 긴 세월 동안 남들의 즐겁고 슬프고 아프고 속상하고 억울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때로는 공감하고 의심하며 확인하는 수많은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며 살았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설레지 않는 순간이 올 것이고, 더 이상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다고 느낄 때가 오면 나는 펜을 놓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나 자신에게 천착하고 싶다. 어쨌든 조직보다는 개인이 삶이 더 행복하면 좋겠다. 그러려면 역설적으로 조직이 튼튼해야 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 보람을 찾고 지지를 받아야 한다. 가끔씩 내가 싸워야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다. 거대 담론부터 미시 담론까지. 매일 끊임없이 토론하고 고민하는 데 답이 안 보인다. 나는 오늘 무엇에 저항하고 있으며,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충북민언련은 지역 언론사들을 모니터링하고 발표해왔다. 애정과 애증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난파선과 같은 지역언론과 시민사회가 전진하기 위해서는 지금 노를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순간도 지나갈 것이고, 우리가 노를 놓지 않는다면 어딘가에 도달해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