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③] 풀뿌리언론의 씨앗을 심고 가꾸는 일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 - 황민호 옥천신문 대표

충북민언련 사무국
202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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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언론의 씨앗을 심고 가꾸는 일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

 

‘군청 앞에서 삭발 시위를 해도 뉴스 한 줄 나오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죽하면 인근 지역신문까지 제보가 올까? 수십 번의 제보에도 좀처럼 행정구역을 넘어서려 하지 않는 습 때문에 멈칫하고 망설이며 가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제호에 지역명이 떡 하니 박혀 있는데 그걸 넘어서는 취재에는 나름 합당한 이유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웃의 어려움에 언제까지 모른 척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흔히 언론판에서 이상적인 모델로 먹히는 ‘옥천신문’이 타 지역에서 자기복제가 이뤄지지 않는 것에 안타까워하며 재생산되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떤 다듬어진 매뉴얼과 축적된 시스템으로 타 지역의 풀뿌리 언론 창간을 적극 도와줄 수 있다면. 이런 생각으로 2년 전 코로나19 시작되기 전 인근 영동으로 자청해 무료 강연을 다녔고 풀뿌리 언론을 만들려고 주체가 된 시민들을 대상으로 구체적으로 준비할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코로나19가 시작됐고, 하겠다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그걸 놓으면서 삽시간에 의기충천했던 마음들은 이내 흩어졌다.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여전히 제보가 행정구역을 넘어 지속적으로 월경을 시도했고, 그런 제보를 묵혀둘 수만은 없었다. 옥천의 가장 변방 청산면에서 지난해 면 지역 최초 마을주간신문을 만들면서 영역을 조금 더 확장하기 시작했고 생활권인 인근 영동과 보은의 소식까지 매만지기 시작했다. 바운더리가 커지다 보니 만날 사람과 처리해야 할 민원이 연결과 집중되는 것이 어려웠다. 이미 보은 지역에는 두 개의 지역주간 신문이 있어서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고, 그 필요와 쓸모에 가장 크게 부응한 영동을 중심으로 한 소식을 4개월 전부터 다루기 시작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듯이 민주주의와 공공성에 목말랐던 주민들이 천천히 신문을 찾았다. 변방에서 시작된 변화의 물꼬가, 경계에서 느끼는 다양성의 문화가, 제대로 된 풀뿌리 언론이 없는 영동에 씨앗을 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옥천신문은 또 하나의 복제된 풀뿌리 주간신문을 과감히 시작한다. ‘주간 영동’, 10월부터 불리게 될 제호이다. 이제 옥천신문만을 언급하지 않도록, 옥천신문의 34년 된 축적된 신문 제작기술과 저널리즘에 대한 태도를 짧은 시기에 빠르게 이식할 예정이다. 위기이지 않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한 달 한 달이 늘 고비이지만, 이웃 영동을 위해 주민들과 함께 옥천처럼 제대로 된 풀뿌리 언론을 하나 만들어보기로 결의를 한 것이다. 흔히 지방일간지 출신들이 지역에서 창간을 하면 지자체를 몇 개씩 끼고 신문을 만든다. 지자체 광고를 염두해 둔 포석이다. 하지만 풀뿌리 언론을 제대로 한 사람이라면 지자체 광고보다 밀착된 보도로 구독자에 집착한다. 주민 하나하나의 민원과 제보가 소중하고, 그것이 지역의 기록이며 구독의 연장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옥천신문이 34년 전 구독 한 부로 시작했던 것처럼 지금 영동에서 구독 한 부로 시작하고 있다. 풀뿌리 언론은 34년 역사의 옥천신문도 여전히 힘든데, 새로 시작하는 풀뿌리 언론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알음알음 지역에서 구독을 소개해주고, 노동조합에서 후원해주고,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에서 제보나 민원, 후원과 연대를 꾸준히 해주는 것에 감읍할 따름이다.

 

나는 바라고 있다. 이게 제발 끝이 아니고 시작이기를, 영동에서 시작된 새로운 풀뿌리 언론의 실험이 제발 활착하여 뿌리내리고 가지를 뻗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그래서 사이비 언론만 줄창 난립하는 지역마다 이 기운을 전하고, 이 씨앗을 심어주고 싶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간간이 잊을만하면 열리는 선거와 집회에서만 확인하는 판타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민주주의는 일상이고 삶이어야 한다. 숨 쉬는 공기여야 하고, 밥과 물이어야 한다.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없으면 죽는 것처럼 오랫동안 배곯으면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것처럼, 물을 못 마시면 안 되는 것처럼 민주주의는 일분일초 살아가는 데 간절하게 필요한 요소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권력과 자본을 견제, 감시, 비판하며 끊임없이 주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하는 풀뿌리 언론은 반드시 필요하다. 옥천신문이 지역을 넘어, 경계를 넘어, 건강한 풀뿌리 언론을 만드는 선봉에 설 것이다. 깃발을 들겠다. 120년 전 제2의 동학농민혁명처럼 지역마다 창궐하는 부패와 부조리를 소거하고, 새로운 풀뿌리 공론장을 만들려는 지역의 민초들은 같이 힘을 모아 달라. 지역마다 건강한 공론장을 재건하는 원탁의 기자단을 모집하며 하나하나 도장 깨기 하듯 시작하고 싶다. 우리가 마음을 모아내면, 얼마든지 시작할 수 있다. 풀뿌리 언론은 결코 자본과 권력이 만들 수 없으며 지역 시민사회만이 만들 수 있는 독보적인 기술이어야 한다. 돈과 힘에 의해 말과 글이 왜곡되면 그 지역은 이미 연옥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땅바닥에서 솟구쳐 나오는 말과 글을 지키는 일, 우리 모두 일상에서 지금부터 시작해보자. 옥천신문이 늘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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