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언련 대안언론 창구 역할 기대"

이수희
2007-07-19
조회수 116

회원탐방 5- 증평기별 기자 신경자 회원님

드디어 UCC 만드는 데 성공! 증평기별 신경자 기자는 이제 동영상 뉴스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지난 6월부터 시작된 홍보영상 제작교실에서 열심히 배워 도법스님 순례기 영상을 제작했다. 너무나 배우고 싶어했기에 흥미롭고, 새롭고, 무엇보다 친절한 선생님이 있었기에 잘 배울 수 있다고 했다. 홍보영상 마무리 작업을 위해 민언련 사무실을 찾은 신경자 회원을 만났다.

▲ 증평기별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신경자 회원님

한겨레신문 배달 일부터 증평기별 기자가 되기까지

증평에서 나고, 자라고, 결혼을 해서 살고 있다. 신기자는 어려서는 집이 가난해서 신문한번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1992년도부터 한겨레신문 증평지국에서 배달을 시작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들게 일했다고 했다. 몸이 힘들어 쓰러진 적도 있었지만, 한계레신문을 배달하면서 오랫동안 신문을 보게 되었고, 또 선량한 시민들이 한겨레 신문을 계속 보니까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을 보면서 언론이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깨달을 수 있었다고.

작은 지역에서 일반주민들이 비판의 눈을 갖기란 쉽지 않은 일. 그 역할을 하는 언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1995년도에는 증평시민신문을 창간해 2001년 3월 폐간 때까지 기자로 활동했다.

경제적인 어려움 등 여러 이유로 신문은 폐간되었고, 인터넷이 활발해지면서 인터넷 언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증평기별이 만들어진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인터넷 언론 활동 역시 쉽지 않았다. 시민기자는 여전히 늘지 않았고, 주민광고에도 한계는 있었다. 월급 한 푼 없이 몇 년 동안을 기자로 생활하는 것이 쉽지 많은 않았을 텐데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를 물었다. 신기자는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지만, 무엇보다 증평지역의 소통의 장이 없다는 점과, 증평지역의 의견을 모으는 일이 쉽지 많은 않다며, 증평기별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 나는 27살 때까지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집, 학교, 성당 밖에 모르고 살았다” 신기자는 증평기별에서 함께 활동하는 이웅재 선배를 만나면서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동체운동이나 대안적 삶을 지향하게 되었다고. 새로운 세상을 만난 그에게 배울 것은 너무나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아졌다.

그는 스스로를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자신의 활동을 격려해주고 비판해주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까.

충북민언련과 함께 자라는 아이들

재준이와 재선이는 이제 8살, 5살이 되었다. 이 아이들은 5살, 2살이었을 때부터 민언련 행사에 참석했다. 재준이와 재선이 엄마인 신기자는 “ 아이 맡길 곳도 마땅치 않고, 아이들에게도 어려서부터 이런 문화를 배우게 해주고 싶었다”며 민언련에서 교육할 때 아이들을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경자 회원은 충북민언련에서 주최하는 모든 행사, 교육에 지난 3년간 빠짐없이 출석하고 있다. 활동가인 나에게는 최고의 고객인 셈. 그러다 최고의 고객에 대한 예우는 여전히 부족하다. 그래도 신경자 회원은 민언련 활동에 열심인 이유를 “ 민언련이 지향하는 바가 옳다고 생각하며, 대안언론인의 창구 역할을 민언련이 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민언련 교육을 통해 대안언론을 모색하거나 비전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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