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쿡 말고 농촌으로 유학 보내자"

이재표
2015-07-09
조회수 129

[이재표의 보이는 마을]전교생 36명을 품은 느티나무

학생은 36명인데 교사 12명을 포함해 교직원은 25명인 초등학교가 있다. 학급당 인원은 대여섯 명 정도다. 교사와 학생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수업을 한다. 전교생이 바이올린과 사물놀이를 기본으로 배운다. 이 학교에는 피아노 여섯 대가 있다. 그리고 전교생에게 햇볕을 가려줄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다.

교실 두 칸 쯤 되는 도서관이 있고 교실 한 칸으로 충분한 강당도 있다. 전교생의 칫솔을 보관하는 칫솔살균기가 있고, 널찍한 급식소가 있다. 교장선생님은 전교생의 이름을 다 외우고 있다. 운동장은 콩나물시루 같은 도시의 초등학교보다 넓다. 학교 앞 문방구가 없다는 게 아쉽지만….

보은군 탄부면에 있는 탄부초등학교 이야기다. 이 작은 초등학교가 보은군 관내 15개 초등학교 가운데 여섯 번째로 학생 수가 많은 학교란다. 이농과 고령화라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학교교육이 미덥지 않아 각종 사교육 현장으로 아이들을 내모는 극성스러운 학부모들은 왜 시골학교를 내버려두는 것일까? 아이와 학부모, 교사 등 교육주체 모두가 행복한 학교는 시골학교에서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초등학교에 입학할 아이가 있다면 나는 농촌유학을 고민했을 것 같다. 시골학교에 생생한 교육 현장 속으로 들어가보자.

 

 

<청주마실> “36명 중에서도 반기문 나올 수 있어요”

(기사바로가기 http://www.cjmasil.com/news/articleView.html?idxno=972)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수채화처럼 맑았다. 선생님은 아이들과 친구처럼 어울려 피구를 했다. 진초록 크레파스를 꾹꾹 눌러 그린 듯한 느티나무의 푸름은 눈부신 운동장 위에 한 뼘 그늘을 만들었다. 그 작은 그늘은 5학년 전원을 품기에도 충분했다.

“우리 학교의 과밀학년입니다. 5학년이 11명이나 돼요. 저 아이들이 졸업하면 전교생의 30%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거예요.”

연규영 교장이 웃으며 말했다. 전교생이 36명인 탄부초등학교 이야기다. 그렇다고 우습게보면 안 된다. 보은군 관내 15개 초등학교 가운데 학생 수가 6번째로 많은 학교다. 더군다나 2011년 2명이 전학을 온 이래 2013년 3명, 2014년 2명, 올해 4명이 전학을 오는 등 시골학교로서는 드물게 아이들이 느는 학교다. 탄부공립보통학교로 문을 연 것이 1935년이니 역사도 개교 80년에 이른다. 한때는 사직분교장과 보덕분교장을 거느렸던 학교다. 그런데 이 모든 게 어리석은 생각이란다. 학교의 수준을 어찌 학생 수나 역사로 서열화하겠는가?

▲ 전교생이 36명인 탄부초의 과밀학급은 11명이나 되는 5학년이다. 그래봤자 그들을 품기에 느티나무 그늘이면 충분하다

“교육의 효율성을 거론하면서 소규모 학교를 없애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생각을 바꿔야합니다. 36명 중에서도 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 국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나올 수 있습니다. 교사들이 열심히 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 중에서 반기문 같은 사람이 나오지 말란 법이 있습니까? 교육은 크기로 따지는 게 아닙니다. 시소에 앉히면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교사의 수준만큼 아이들이 자란다’는 것이 탄부초 연규영 교장의 지론이다.

한 학급이 60~70명인 콩나물교실로도 모자라 2부제 수업을 하는 국민학교를 졸업한 터라 전교생이 36명이라는 보은군 탄부면 탄부초등학교는 왠지 가상현실 속의 학교 같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유월의 한낮, 들판에는 농군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게으른 황소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학교 앞 문방구도 없다. ‘이 학교 아이들은 논 사이로 난 이 꽃길을 걸어 등교하겠구나.’ 신발주머니를 돌리며 농로를 걷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전교생이 버스로 통학합니다. 버스 두 대가 보은군 10여개 리를 돕니다. 멀게는 한 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오는 아이도 있고요. 재미있는 건 가까이 사는 아이들도 버스를 타고 옵니다.”

박현숙 교감의 설명이다. 예상은 처음부터 빗나갔다. 속단은 금물이다. 손바닥 같이 들여다보이는 이 작은 초등학교에도 분명 깨알 같은 이야기들이 진진할 것이다.

“어차피 한 학년 당 한 학급이니 6년 동안 같은 얼굴 보고 지내겠네요. 선생님들도 아이들과 함께 학년이 올라가나요?”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아이들은 6년 동안 한 반이죠. 담임선생님도 아이들과 가족처럼 지낼 수 있도록 2년 정도 연임합니다. 그 이상은 지양하는 편이에요. 너무 길면 단점도 닮지 않겠습니까?

연규영 교장은 아이들도 교직원도 서로를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지낸다고 했다. 시골도 출산율이 예전 같지 않고 학교에 학생 수가 적으니 서로를 형제자매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학생 수를 고려할 때 압도적으로 많은 교직원의 수다. 교장, 교감을 포함해 교사만 12명이니 학생 세 명당 교사가 한 명이다. 행정직, 회계 등을 더한 교직원의 총원은 25명에 이른다. 인적구성을 놓고 보면 교육이 추구해야할 미래형 학교가 맞다.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25명이 36명을 돌보는 학교는 그야말로 아이들을 품안에 품고 있는 학교다. 그런데 그 돌봄이 통제와 감시라면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가족과 같은 사랑이 넘치는 학교라면 아이도 교사도 행복할 것이다.

연규영 교장 “여기가 고향이에요”

연규영 교장은 행복해 보였다. 인터뷰 내내 웃음이 가시지 않고 재치 있는 대화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어린 시절 보아왔던 근엄한 교장선생님과는 사뭇 달랐다. 1960년생인 연 교장은 탄부면과 경계한 마로면 적암리가 고향이라고 했다. 1981년 음성 오선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한 이래 제천, 단양까지 충북 각지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2000년대 초반 고향 보은으로 발령이 났지만 마로와는 거리가 먼 산외초등학교였다. 고향과 옆 동네인 탄부초등학교의 25대 교장으로 취임하게 된 것은 교장공모를 통해서였다.

“마로에서 태어나 지금은 폐교가 된 적암초등학교, 탄부면의 보덕중학교를 나와서 보은고등학교 1회입니다. 2012년 9월에 공모교장으로 왔는데, 처음으로 맡은 교장이고 고향이다 보니 늘 각오가 새롭죠. 교사는 금을 동으로, 동을 금으로 만들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책임감을 놓지 말아야합니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실에 파리 한 마리가 들어와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담임 6명 중에 2명이 또 초빙교사에요. 좋은 선생님들 모셔오려고 하고 선생님들의 사명감도 큽니다.”

탄부초의 슬로건은 ‘꼼지락’이다. 콩나물처럼 자라는 아이들이기에 배울 때도, 놀 때도, 잠잘 때도 꼼지락 꼼지락 자란다는 의미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꼼’은 여러 가닥을 엇감아 한 줄로 만드는 ‘꼬다’의 의미란다. 탄부교육공동체가 그렇다. ‘지(智)’와 ‘락(樂)’은 지혜와 즐거움의 의미를 담은 한자단어다. ‘행복한 배움으로 꿈과 끼를 키우고 건강한 몸으로 익힌 재능을 가슴으로 나누자’는 의미란다. ‘꼼지락’이라는 슬로건을 제안한 김인옥 교무부장의 설명이다.

연규영 교장도 맞장구를 쳤다.
“초등학교는 지식을 전달하고 전문가를 키우는 곳이 아닙니다. 계기를 만드는 교육이 필요한 곳이죠.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삶을 돌아볼 때 ‘탄부초 다닐 때가 행복했어’라는 기억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아니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행복할 수 있도록 행복해지는 법을 깨우쳤으면 좋겠어요.” ‘행복을 가꾸는 꼼지락 탄부교육’의 의미가 마음으로 이해됐다.
 

상상력과 감수성을 키우는 교육

산과 계곡의 높고 낮음과 들판의 평평함을 보고 자라는 것만으로도 삭막한 빌딩 숲에 갇힌 도시의 아이들보다 행복할 것 같았다. 연규영 교장, 박현숙 교감, 김인옥 교무부장과 함께 도서관과 교실, 과학실, 체육수업 중인 운동장 등을 돌아봤다. 수업의 진행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아이들과 인터뷰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느낌이라는 게 있다.

학년별로 대개 네댓 명의 아이들이 교사와 머리를 맞대고 수업을 한다. 책상의 ‘열과 오’를 정렬해야했던 그 옛날의 초등학교나, 성적순 또는 부모의 재력(財力)에 따라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서열의 존재하는 도시의 초등학교와는 분명 공기가 다르다. 나도 다시 코흘리개가 되어 키 작은 의자에 앉고 싶었다.

정규수업도 수업이지만 탄부초의 방과후 교육은 아주 특별했다. 학원을 보낼 이유가 없어보였다. 사교육을 대체하는 수준이 아니라 질적 우수성이 탁월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학교에 피아노가 여섯 대가 있어요. 읍내에서 학원 하던 분이 기증한 거예요. 바이올린, 사물놀이는 기본으로 배웁니다. 우쿨렐레, 단소도 배우고요. 영어교육도 스토리텔링 영어라고 해서 원어민 교사들이 늘 한두 분씩 있어요. 우리말은 한마디도 못하는 교사들만 데려오니까요. 회화도 하지만 영어연극을 공연합니다.”

도대체 도시에서 이 많은 것을 가르치려면 부모의 등골이 휘다 못해 부러질 지경일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끌려다니 듯이 배우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즐긴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사물과 바이올린을 들고 경로당으로 봉사활동을 다닙니다. 일종의 재능기부죠. 아이들은 효경심과 풍부한 감성이 자랍니다. 아름다운 것을 듣고 보고 연주하고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려는 겁니다.”

연규영 교장은 아이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게 하는데 부모님, 선생님은 물론이고 경제를 지탱하는 기업인들에게도 썼다고 한다.

“닭을 유통하는 기업의 회장에게 단체편지를 쓴 적이 있어요. 그 회사 기획실에서 전화가 왔어요. ‘도대체 무슨 의도가 있는 거냐’고요. ‘아무 의도 없다. 세금을 많이 내줘서 고맙다는 의미’라고 했어요. 그런데 냉동닭이 엄청나게 온 거예요. 애들도 몇 명 없는데….”

다 같이 파안대소했다. 돌이켜보니 나도 그때가 행복했는데 탄부초 아이들만큼 행복했던가. 돌아오는 길에 스스로 던진 물음이다. 

 

<청주마실>‘미쿡’ 말고 농촌으로 유학가자

   (기사바로가기 링크 http://www.cjmasil.com/news/articleView.html?idxno=406)

 고은의 시 중에 ‘그 꽃’이라는 시가 있다. 마땅히 외우는 시 한 편이 없다면 이 시를 외울 것을 권한다. “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이게 시의 전문이다. 서둘러 갈 때, 목표만 보고 갈 때는 과정을 즐기지 못한다. 때로는 빨리 가야할 때도 있고 빨라야 능력이 있는 것처럼 인정받는 세상이지만 교육만은 그렇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느린 교육을 추구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삶과 교육이 조화로운 느림보교육공동체 ‘거북이학교(대표 신달우)’다.

거북이학교는 1998년 ‘사회교육센터 일하는 사람들’의 ‘대안교육센터 교육다움’으로 출발했다. 2000년부터는 폐교상태에 있던 청원군 미원면 종암리 종암분교로 들어갔다. 거기에서 농사도 지으면서 아이들을 상대로 각종 체험학습을 진행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농촌유학’ 프로그램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외국으로 떠나야만 유학은 아니다. 그런데 시골에서 도시로 가자는 것도 아니고 농촌으로 유학을 보내자고 하니 생소하다.

▲ 거북이학교가 종암분교 시절에 운영했던 체험학교.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그럴 듯하다. 신용만 거북이학교 기획운영팀장은 “도시에 사는 초중고 학생들이 농촌에서 일정기간 생활하면서 그곳에 있는 학교를 다니는 것이 농촌유학이다. 가족이 다 이사를 올 수가 없으니 현지 농가나 공동숙소에서 생활하면서 학교와 숙소를 중심으로 다양한 대안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신 팀장은 또 “아이들이 몸과 마음으로 자연과 사람의 상생을 배우며 성장하는 것이 거북이학교의 철학이다. 따라서 생태적 감수성을 일깨우는 자연친화교육,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교육, 주체적 힘을 키워가는 교육, 이야기를 곧게 토론할 수 있는 민주주의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부분이 비인가인 대안학교가 아니라 현지에 있는 일반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학력이 그대로 인정된다. 갈수록 학생이 줄어 폐교위기에 처한 시골학교들도 두 손을 들고 환영하기 마련이다.

올 2학기, 초등 고학년으로 시작

거북이학교는 일단 초등학교 고학년(4~6학년) 12명을 모집하기로 했다. 이번 2학기부터 시작하고 내년부터 본격화할 계획이다. 유학생들이 다닐 학교는 전교생이 150명 정도인 미원초등학교다. 학교로서는 산술적으로 학생이 느는 것뿐 아니라 교육의 활력을 기대할 수 있다. 일반교사는 물론이고 전문강사, 마을주민, 학부모들이 참여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연을 활용한 놀이, 인문학강좌, 농장체험 등이다. 이같은 교육은 학교와 생활공간에서 이뤄진다. 노작활동으로 목공도 하고 텃밭농사도 짓는다. 농사는 먹을거리를 자급자족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생활공간은 미원면 운교리에 마련했다. 운교리 생활관은 교육장을 겸한 거실 2개, 4명이 생활할 수 있는 방 3개, 다락방 1개, 식당 등으로 구성됐다. 신 팀장을 비롯한 거북이학교 직원들이 생활관 옆으로 아예 생활터전을 옮긴다는 점이 미더움을 더해준다.
미원초등학교를 다니는 데는 물론 학비가 들지 않는다. 다만 숙식에 드는 생활비와 특화된 교육프로그램에 드는 비용은 자부담해야 한다. 1년 연회비 140만원에 매달 70만원을 내야한다. 여행이나 교육재료 구입 등에 드는 별도의 비용은 없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농촌유학이 궁금하다면 운교리 생활관을 방문해 보기를 권한다. 4월부터 농촌유학을 미리 체험해보는 맛보기 가족캠프를 매달 운영하고 있다. 4월에는 6가족 26명이, 5월에는 4가족 16명이 다녀갔다. 참가비는 어른 3만원, 아이 2만원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저학년이라 올해 입학대상은 아니었다.

신용만 팀장은 “도시의 아이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을 살필 여유가 없다. 하늘을 보며 숨을 고르고 그 숨으로 주변과 함께 호흡하며 삶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농촌유학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1976년, 일본 산촌유학에서 시작
우리나라 전북이 첫발, 충북은 단양 한드미가 시초

농촌유학은 대안교육의 천국인 이웃나라 일본에서 시작됐다. 일본은 산촌유학이라고 부르는데 그 역사가 197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들을 키우는 모임이라는 뜻의 ‘소다테루카이’라는 단체가 1976년 9명의 아이를 ‘야사카’라는 산촌마을로 전학시킨 것이 그 시초다.

국내의 농어촌유학은 2006년부터 움텄다. (사)생태산촌만들기모임과 대안교육 잡지 ‘민들레’를 중심으로 논의가 본격화된 것. 2007년에는 전라북도 정읍에 고산산촌유학센터가 만들어졌고 현재 44개 센터가 진행되고 있다.

충북에서는 단양군 가곡면에 있는 한드미마을이 농촌학교의 시초다. 한드미마을은 단양군 가곡면에 위치한 가곡초등학교 대곡분교와 협력해 농촌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06년 당시 정문찬 한드미마을 대표가 농림부의 ‘1인1촌 전문가 컨설팅 지원사업’을 신청했고 마을을 방문한 김재현 건국대 교수로부터 일본의 산촌유학에 대한 조언을 받아 시작됐다.

2008년 폐교 위기에 처했던 대곡분교는 농촌유학을 계기로 현재 총 학생수가 37명(30명이 유학생)까지 늘었으며 최근에는 본교(28명)보다 학생 수가 더 많아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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