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울타리일까

정진아
2014-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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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읽기 - 정진아의 마이플레이스]

“자식의 결혼 임신에 동의하지 않을 때 어떤 부모들은 ‘호적에서 파버리겠다’는 말을 하잖아요. 가장 자녀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돌아서는 거죠. 그에 비해 <마이 플레이스>의 가족들은 참 건강한 관계를 맺어요. 다시 봐도 울컥했던 순간들이 많았어요.”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의 <마이 플레이스> 관람 평이다.

가족이라는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지는 울타리는 곧 속박으로 변하기 쉽다. 꼭 같은 가치관을 가져야만 꼭 구성원의 기대에 부응해야만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잘못을 쉽게 저지른다. ‘호적에서 파버리겠다’는 겁박이 결혼 임신 문제에만 한정되지 않는 게 바로 그 때문이다. ‘하지 말라는 건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공부는 그럭저럭하는 모범생’이던 내가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시작하자 들어야 했던 첫 마디가 ‘호적에서 파버리겠다’는 겁박이었다. 시대가 그러하다고, 부모님도 60년대 총탄이 날아드는 중앙청 광장에 서계시지 않았느냐고 설득해 봐도 막무가내였다. 하지만 가족이라면 한 발 물러나서 ‘나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말없이 지켜봐주는 그런 믿음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사고방식이나 삶의 태도가 서로 다르더라도.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느리고 겁 많은 네빌의 부모가 악마 볼드모트에 맞서 싸우다 고문을 당해 평생 정신병원에 있다는 게 밝혀졌을 때, 네빌의 할머니가 그런 자식을 보며 대견해 하는 모습이 그려졌을 때 내 가슴도 뻐근하도록 감동을 받은 기억이 있다. 이래야하지 않을까.

내 아이가 결혼하지 않은 채 임신한다면 다리를 분질러 놓겠다든가, 자기가 만든 기준에 못 미친다고 ‘사회 부적응’, ‘루저’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이런 치기는 어디서 비롯한 걸까. 자본의 관점에서 봐도 사회정치경제문화 어느 관점에서 봐도 치기어린 우리들은 루저, 사회부적응 낙인에서 자유롭지 않은데 말이다. 자신은 루저가 아니라고 사회부적응이 아니라고 외치려다 보니 문숙이 같은 만만한 대상에게 퍼붓고 있는 건 아닌지.

인생의 대장정을 시작한 내 아이가 넘어지지 않는데 힘을 쏟을게 아니라 인생의 고비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힘을 갖게 하는 게 진정 부모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넘어질세라 먼지 묻을세라 키웠더니 늙은 부모를 자신의 아이를 길러주는 보모정도로 아는 요즘 2-30대의 젊은 부모를 보며 땅이 꺼져라 한숨 쉰들 무엇 하랴. 스스로 만든 덫인 걸.

어른이 되어도 흔들림은 여전하다. 평생에 걸쳐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하고자 하는 것을 찾는 것, 나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는 것, 그것이 인생이려나. 가족이라는 틀 아래 옭아맬게 아니라 섬처럼 독립적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자라나는 것, 넓어지는 것, 그런 형태가 좋지 않을까.

“가족은 서로간의 감정이 덕지덕지 엉켜있죠. 많은 다큐와 드라마는 가족들이 화해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해결된 것 없이 다시 엉킨 상태로 돌아가는 게 대부분이죠. 그에 비해 <마이 플레이스>의 가족은 ‘따로 또 같이’라는 말이 생각나서 좋았어요.”  뉴스타파 김진혁 피디의 <마이 플레이스> 감상평이다.

동생과 조카의 뒷모습을 담은 마지막 장면에서 해변에 드리운 감독의 그림자, 계속해서 밀려오는 파도 속 한 발짝 앞의 어머니 그리고 그 뒤에 손 꼭 잡고 서있던 감독과 조카의 모습에서 서로를 향한 믿음이 느껴졌다. ‘누구나 집에 오면 가족이 된다’는 이 영화의 카피처럼 몽골에서, 캐나다에서, 한국에서 따로 지내는 가족이지만 모이면, 집에 오면 진정한 가족이 되는 이들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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